힘 과시|김영배 <정치부 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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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개헌정국의 막바지 고비를 눈앞에 두고 속으로 달아오르는 신열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분당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새삼 두 김씨의 지지를 확인하는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총재의 보좌역이 총재를 비난하고 나섰다. 어제의 동료들이 오늘 면전에서 묵은 속내를 들춰가며 얼굴을 붉히고 있다.
비정한 모습들이다. 자기 목소리는 감춰지고 격앙된 감정의 냄새만 진하게 배어 나오고 있다.
신민당의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당내 주류들이 느끼는 시국의 절박성도 이해가 간다. 무슨 조치다, 개편이다 해가면서 두 김씨가 정계에서 배제되느니 하는 현실앞에서 그들에게만 너그럽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 힘 가진 쪽은 꿈쩍을 않는데 그들에게만 신축성과 타협을 기대하는 것도 불공평하다.
그들의 반대파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민우구상」이란 것을 앞세워 그들이 2중의 소리를 낸 것도 사실이다. 협상을 함축하면서도 협상론이라고 떳떳하게 주장하지 않았고, 타협을 바라면서도 투쟁을 외쳤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의문스런 태도도 의심받아 마땅하다.
그렇지만 왜 모든 목소리가 한 갈래로만 나와야 하는 것인가. 여러 갈래 목소리를 아울러 한 가닥으로 잡아가는 것이 참다운 지도력이 아닐까 싶다.
여러 가지 이견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참다운 민주정당일 것이기 때문이다.
서명작업을 한다, 지구당 개편대회를 취소한다는 것등은 실력행사요 힘의 과시다. 그런 것들은 최종수단이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캥거루 코트와 같은 분위기는 없었는지 걱정하는 눈초리도 의식해야한다.
대통령 직선제가 올바른 선택이므로 그것을 관철하는 대가로 과연 그 밖의 모든 것은 희생해도 좋은 것인가. 무모하다고 비난해온 권력앞에 똑같은 무모함으로 맞서는 것이 상책인가. 아니면 민중노선으로 나가는 것인가.
이런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들이 나와야 할 시점이다. 그 답변이 꼭 한갈래일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여러 갈래 소리들이 당당히 개진될 수 있어야 한다. 또 여러 갈래의 이견은 토론과 대화를 통해 조정돼야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오로지 힘으로만 밀어붙인다면 모두 상처를 입게 마련이다. 그것이 진정 국민에게 보이는 정치는 아닐 것이다. 이성과 논리가 앞서야할 개헌노선 투쟁이 아닌, 끈적한 당권 싸움으로 비쳐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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