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도 되는 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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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3·3대 행진」의 날 하오1시 서울 종로5가 네거리.
한 시민이 사복경찰에게 끌려간다.
두 팔과 두 다리를 경찰들에게 붙잡힌 채 끌려가는 김 모 씨(39·무직·서울 중화동).
『이거 왜 이래요. 이래 되는 거요. 말로 합시다.』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김씨.
김씨는 바로 전 사복경찰이 시위 학생 한 명을 연행해 가며 주먹질하는 것을 보고 항의했다가 자신이 같은 꼴을 당한다.
김씨와 경찰의 뒤를 1백여 명의 시민들이 항의의 웅성거림 속에 따른다.
『나쁜×들.』
시민들 틈에서 큰소리 욕설이 나오자 앞서가던 사복경찰이 험악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본다. 시민들 틈에서 20대 젊은이가 경찰의 시선을 피해 후다 닥 달아난다.
『자꾸 따라오면 모두 연행하겠소.』
경찰의 으름장.
시민들은 공연히 김씨 꼴이 되기는 내키지 않았던지 주춤주춤하는 사이 김씨는 저만큼 끌려간다.
『아니, 형님 아닙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이거 놓아요.』
공교롭게도 김씨의 고향후배 우 모 씨(37·회사원)가 근처를 지나다 김씨를 보고 달려들었다.
『경찰책임자가「무조건 연행」을 않겠다고 장담한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 깁니까.』
『오늘은 시위 가담혐의만 있으면 모두 연행해도 좋다는 상부지시입니다.』
경찰은 김씨를 4백여m나 끌고 가 닭장(호송버스)에 짐짝처럼 팽개쳤다.
버스에까지 김씨를 뒤따라오며 매달렸던 우씨는 김씨 집에 연락이나 해주어야겠다며 총총히 발길을 돌렸다. 먼발치서 시민들은 이쪽을 건너다보며 여전히 웅성거리고 서 있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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