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신앙」이 되살아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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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0년대 이후의 근대화 물결속에서 비과학적 「미신」으로 치부돼 한동안 시들했던 부적신앙이 새삼 되살아나 크게 성행되고 있다. 불교 태고종 한정섭법사가 최근 3천명의 서울시민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분의2 이상이 부적을 소지하고 있거나 소지한 경험을 가졌고 부적 소지자 중에는 상당수의 불교 성직자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래 일부불교 사찰들은 음력 정월이 되면 신도들에게 오랜 민간신앙의 뿌리를 가진 「부적」을 만들어 주고 한햇동안의 「가정 평안」을 빌어주는 풍습을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은밀히 퍼져나가고있는 오늘의 부적신앙 부활에는 포교적 성격을 띤 사찰의 부적 배포가 큰 몫을 하기도 한다.
부적신앙의 새로운 성행은 이밖에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토속문화의 재조명과 사회적 불안, 본능적인 미래성취욕등과도 깊은 관련을 갖는 것으로 풀이된다.
정초면 부적을 몸에 지녀 가정의 평안과 운수대통을 기원해온 우리의 오랜 부적신앙 풍습은 자랑스런 갖가지 민속의 원천이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의 관계에서 「대립」을 멀리하고 「미움」의 싹을 잘라 냄으로써 공동체의식을 다져주기도 했다.
아기를 낳았을때 문설주에 걸어놓는 빨간 고추나 시험에 붙으라고 교문에 붙이는 강엿, 출옥자에게 먹이는 두부, 아기 못낳는 사람이 사내아기를 낳은 여인에게서 훔쳐가는 속옷등은 한민족의 생활풍습을 아름답게 꾸며온 부적신앙의 상징물들이다.
부적이란 한문·범어 등으로된 갖가지 주문을 쓰고 때로는 그림을 그려넣기도한 한장의 종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한장의 종이가 무한한 신통력을 가졌다고 믿을때 더없는 위안과 어머니의 품속같은 따스함을 느끼며 종교적 심성에 접근해간다.
부적은 종이만이 아니고 복숭아나무·대추나무·괴목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지부나 목부는 노란 색을 입히고 인주를 사용해 붉은글씨 주문을 써넣으면 더욱 영험스런 힘을 갖는다.
벼락을 맞은 복숭아·대추나무는 상서로운 힘을 가져 사(사)한 기운을 물리치는데 이들 나무조각에 심향·전단향등의 향기를 씌운후 주문을 쓰면 신비의 힘을 지니는 목부가 된다.
흔히 마스코트라고해 몸에 지니고 다니는 서양의 작은 인형이나 동물 모양도 재료·모양·제작방법이 다를뿐 행운을 비는 점에서는 우리의 부적신앙과 똑같은 맥락이다. 부적의 그림은 용·호랑이·독수리등의 동물과 해·달·별등이다. 범어 주문으로는 「옴」(암)등의 대명왕 진언과 천수다라니·정타나니같은 밀교적 주문구가 많이 쓰인다.
부적신앙은 이같은 불교의 밀교적 요소와 호신불·염주소지등의 신앙의식과 접목되면서 민간은 물론 불가에서도 널리 번져왔다.
부적의 크기와 모양은 일정치 않지만 대체로 직사각형모양이 많고 크기는 가로 5∼10㎝, 세로 15∼25㎝ 정도
민간신앙의 부적 종류는 ▲병부 ▲천존부 ▲몽부 ▲삼재부 ▲소아야제부 ▲소원성춰부 ▲화합부 ▲도살부등이 있다.
병부는 태워 먹거나 문위에 붙여 질병을 예방·퇴치하고, 몽부는 꿈이 불길할 때 십이지에 맞추어 만든 12개 부적중 그 날짜에 맞는 부적을 지닌다.
칠성부·구령부·만사대길부·신농소원부등의 소원 성취부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닌다.
불가의 전통적 부적으로는구도부·부득견불부·염불부·왕생정토부·금강부·준제부·관음부등을 손꼽을수 있다.
준제부는 준제진언을 부적화한 것으로 몸에 지니면 복과 수명이 산과 바다같아진다고한다.
민간신앙 차원에서의 부물적상징은 복식·색깔등에 까지도 연결돼 청홍색의 한복이나 팥밥·팥죽·팥떡등은 모두 악귀를 물리치는 척사의 힘을 갖는다.
또 바가지는 특히 권선징악의 뜻을 지녀 깨져도 아궁이에 넣거나 버리지 않고 집안에 매달아 놓으며 작은 박을 차고 다니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고 건강에 아주 좋다는 것이다.
입춘이 되면 대문이나 기둥에 써붙이는 「입춘대길」도 대표적인 민간신앙 부적의 하나다. 대들보의 성주신을 받드는 안택부나 부엌과 돈을 관리하는 재신인 조왕신을 모시는 조왕부, 대문을 지키는수문신의 상징인 「호」자 오항부등도 민속 부적들이다.
이같은 부적신앙은 인간과 인간만으론 충족할수 없는 신뢰와 무미건조한 지식만으론 이해할수 없는 신과 인간 공존의 터전을 마련해왔다.
권선징악과 모든 재액을 막는데 믿음의 목표를 둔 부적신앙은 신의 권위보다는 그를 믿는 사람의 정성을 중요시하며 예방을 위한 노력을 요구함으로써 인간 정신과 행동의 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 고유 전통 관습의 하나인 부적신앙은 이제 원시속의 샤머니즘으로 묻어두기보다는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면서 당당한 민속으로 개발, 전승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들이 많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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