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속에 잠자는 「고문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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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처참한 죽음은 우리가 도대체 어느 시대 어떤 체제에서 살고 있는지를 되새겨 보게한다.
억지로 팔이 비틀린채 욕조에 머리를 처박혀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이 막혀 죽어갔을 그 죽음의 현장은 상상만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차라리 「탕」하고 책상치는 소리에 「억」하고 쓰러졌더라면 남은 사람들의 가슴을 조금은 덜 아프게 했을지도 모를 것을.
항상 웃는 얼굴에 안경을 걸치고 밉지 않은 장난을 좋아해 「뺑철」이란 별명이 붙었던 막내동이 박종철군, 스물한살의 꽃다운 나이에 돌아올수 없는 원혼이 되어 임진강 강물에 흩어져간 그 죽음앞에 우리 모두 슬프다 못해 끓어오르는 분노를 누를수 없는 심정이 된다.
밀도살장의 소 백정들 세계에서나 듣고 볼수 있는 그 잔혹스런 행위가 어쩌면 창백한 「뺑철」이를 상대해서 자행될수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짐승의 행위다. 인간을 짐승다루듯 했다니 너무도 엄청난 충격이요, 공포가 아닐수 없다.
박군이 죽음과 더불어 몸부림쳤을 그 현장의 영상은 우리들의 뇌리에 일제군국주의 식민지치하의 헌병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고문을 해서 반대자를 옥사시키고 폐인을 만들며 배신자가 되게 하고 사회적으로 매장해 버리던 그 혹독스런 역사와 동시대로 「타임머신」을 되돌려놓은 것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제아무리 자유민주주의를 내걸고 정의의 구현을 외쳐대도 그 정치 문화 어느 한구석에라도 공권력의 이러한 탈선풍조가 암영을 드리우고 있다면 거기에는 민주도, 정의도 자랄수가 없다. 번지르르하게 내거는 구호는 모두가 속임수요, 공염불이 된다.
공권력의 집행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만큼 난폭해지고 있는 것도 그 사회의 분위기와 상황과 깊은 관계를 맺고있다고 보는것이 올바른 진단이다.
「엠네스티」보고서는 『고문은 법의 공정한 절차가 준수되느냐, 무시되느냐하는 법적인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국민의 동의없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법에 의한 통치가 정지된 곳에서 고문은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사회일수록 아무런 법적인 제약을 받지않는 특정그룹이 성역처럼 존재하고 수사기관의 대민자세는 고압적이고 폭력성을 띤다. 수사기관에 연행됐다하면 으레 『얼마나 당했는가』하는 것이 인사말로 오가는 세태가 돼있다.
그런데도 이들의 폭력과 가혹행위를 불식시키고자하는 집권층의 의지와 노력은 미흡하다.
공권력의 탈선으로 생긴 사건이나 문제는 언제나 흐지부지 얼버무려지고 은폐된다.
문제에 대한 명쾌한 척결과 응징이 없이 넘어가는 것이 관행처럼 돼있다.
공권력의 탈선이나 인권유린행위가 헌법에서부터 금지되고 형법에는 무거운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그것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규범은 있으나 법전속에 잠자고 있는 상태다.
그리하여 범죄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범죄행위를 하고 직권을 남용하며 신성해야할 법집행을 불법으로 전락시키는 작태가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말썽이 됐던 부천경찰서의 이른바 「성고문」사건도 그러한 사례로 손꼽을수 있다.
사회를 그토록 시끄럽게 만든 사건의 담당수사관에 대해 검찰은 우발적인 사건이고 반성의 정이 뚜렷하다는 점을 들어 기소유예로 관대한 처분을 했다. 척결과 응징은커녕 두둔하는 꼴이 됐다.
민청련의장 김근태사건, 원효로 윤노파피살사건, 그리고 유신때 야당정치인에 대한 고문사건등 숱하게 많은 사건들이 하나같이 부인되거나 드물게 입증된 경우에도 가해 공무원의 책임문제는 형식적인 문책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범법행위가 싹이 작을때 일찍 그 뿌리부터 삼제되었더라면 오늘 우리앞에 나타난 비극은 면할수 있었을 것이다. 경찰도, 정부도 오늘같이 낭패스런 일은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게 일을 키워온 것이다.
지금까지 고문에 대한 폭로와 추궁이 법정과 의사당, 그리고 재야일각에서 계속돼 왔으나 당국의 답변은 언제나 『고문은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는 지극히 무성의한 한마디로 요약됐다.
국민의 기본권과 정의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마저도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비판을 듣게됐다.
인권침해에 대한 이러한 무신경과 관용이 바로 오늘과 같은 권력작용의 탈선경향을 부채질했다고 할 수 있다.
공판정에서는 수많은 피의자들이 수사기관에서 고문을 당하였다고 호소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를 해명하라고 요구하는 인권단체들의 목소리도 그 어느때보다 높다.
특히 학원사태이후 권력작용의 탈선경향이 이 사회를 불안과 침울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느낌이 짙다.
국가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방대한 조직력, 그리고 물리적인 힘까지 부여받은 권력기관이 법을 무시하고 남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인권을 짓밟고 나아가서 사상자까지 내고있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할지 막막해진다.
이러한 풍조가 바로잡히지 않으면 체제측으로서도 적법성이라는 자기정당화의 기반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고문은 억울한 범인, 무고한 사형수까지 만들어 낼뿐만 아니라 진범의 경우에도 뉘우침보다 한을 품게 만든다. 이것은 사법절차를 위시한 국가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가져온다. 국가의 권위와 도덕성도 파괴된다.
스스로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라 할지라도 공권력에 의한 새로운 범죄, 더욱 가증스러운 제도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나면 한을 품지 않을수 없다.
우리 내부에 한과 눈물이 이렇게 끝간데없이 쌓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서울대 박종철군의 죽음을 이땅에 다시는 공권력의 폭행과 인권탄압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일대경종으로 삼아야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권상황에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어야한다.
이것이 그의 원혼을 달래주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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