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뺨 한 대로 경찰에 불려간 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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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둔 지난해 5월. 서울변두리의 사립 B여중 교무실.
하오 첫수업을 마치고 담배를 빼어 무는 L교사(31)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L선생이십니까. ××경찰서 형사곕니다. 서로 좀 나와주셔야겠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형사의 말은 엉뚱했다.
『학부모의 투서가 들어왔읍니다. 선생님께서 학생을 심하게 때렸다는…. 자세한 말씀은 나와서 하시죠』 엄습하는 무력감에 가까스로 수화기를 내려놓아야했던 L교사의 머리속에는 담임반 한 학생의 얼굴이 클로스업됐다. 1년전에도 담임을 맡았던 K양(15).
성적이 10등이내에 들고 성격도 쾌활한데다 활동적이어서 학급 대의원을 맡았었다.
그런 K양이 3학년이 되면서 비뚤어진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2학년때만해도 빵을 사달라고 조를 정도로 재롱을 피우며 잘 따르던 K양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복도에서 만나도 피하는 눈치였고 수업시간에도 주의력이 흩어져있었다.
그러한 행동은 간혹 의식적으로 나타나 보충수업시간에 나누어 준 참고물을 보라는듯이 구겨 가방속에 쑤셔넣는 일도 있었다.
성적도 떨어졌다.
L교사는 K양을 따로 불러 면담을 해보았으나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다.
그저 교우관계때문이 아닐까하는 느낌뿐 이유를 알수없었다.
그러던중 10여일전이었다. 신체검사시간에 대열을 벗어나 장난을 쳐 주의를 주자 많은 학생들앞에서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라며 큰소리로 반항하는 바람에 그만 뺨을 한대 때리고 말았다.
경찰서와 K양의 일로 머리속이 뒤범벅 된 L교사는 남은 수업을 하는둥 마는둥 마치고 경찰서로 갔다.
사립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교단에 선지 5년. L교사에게는 학교말고 또다른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몇해 안되는 교사생활동안 앙금처럼 쌓민 기억들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어떻게 진행했는지 모르게 끝냈던 첫날수업. 언제나 보람과 힘을 준 초롱초릉한 눈망울들. 교직의 또다른 면을 보여준 교주 교장과의 관계설정. 교과서뿐만 아니라 인간을 가르쳐야 한다며 불태운 사명감….」
그리고 이제 학부모의 고발.
『학생을 좀 심하게 다루셨던 모양이죠. 요즈음은 학생이나 학부모나 예전같지 않은것 같아요.』
자신을 폭력교사로 고발한 학부모의 투서내용과 그것을 전해주는 형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L교사는 온몸이 마비되는 현기증을 느꼈다.
마치 교단에서, 그것도 학생들앞에서 굴러떨어지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여러 학생들앞에서 뺨을 때린 일이 있죠. 아마 그 학생은 심한 모욕감을 느꼈던것같군요. 제 잘못이죠』 『그래도 어디 다친 것도 아닌데 학부모가 경찰서에 투서하다니 세상 참 많이 변했어요. 이번 일은 익명의 투서에 불과하니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절차상 선생님을 오시라고 했읍니다.』 형사는 이같은 투서가 가끔 경찰서에 접수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하긴 교장실에 불러가 학부모의 항의전화에 대한 해명을 하느라 진땀을 횰리는 교사를 교무실에서도 흔히 보아온 터였다.
언제부터인가 교사들은 학부모의 감시를 받기 시작했고, 이제 그 감시는 교사가 교육적 소신에 따라 학생을 교육할수 있느냐 없느냐는 교권의 문제에까지 이르게 됐다던 선배교사들의 한숨섞인 탄식이 체험으로 느껴져왔다.
성남용교련교권부장은 『교사의 말처럼 뺨한대 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에게 창피를 준것은 실수였고, 바로 풀어줬어야 좋았겠지만 걸핏하면 제3자에게 교사를 고발하는 행동이 더 큰 문제로, 교사의 권위실추는 자녀교육의 실패와 직결된다는 것을 학부모들은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서 문을 나설때 저쪽길모퉁이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깊은 수렁으로만 빠져들던 L교사는 감전이라도 된듯 의식을 되찾았다.
순간 가슴 한 구석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한 경기도 시골중학교에서의 일이 살아났다.
학부모 회의날이었다. 다른학부모들이 모두 돌아가기를기다려 어색한 표정으로 다가와 주름진 손을 내밀었던 Y양의 할머니.
『선상님, 떡이라도 조금 해왔어야 하는 건데 형편이 그래서유. 다른 선상님들과 나눠 드세유.』
Y양의 할머니가 퍼든 손위에는 껌 한통이 놓여있었다. <이덕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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