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작가 김호운<소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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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물론 핑계는 많다.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그렇고, 퇴근후에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귀가 시간이 늦어진다. 어쩌다 일찍 들어오거나 일요일 같은 날은 또 밀린 원고를 쓰느라 내방에는 얼씬도 못하게 통제한다.
스스로도 죄지은것 같은 느낌이 들때가 많다. 그래서 매번 이번 일을 끝내면 다음 일요일에는 꼭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야지 하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때마다 무슨 시새움이라도 하듯 평소 별로 많지도 않던 원고청탁이 그런때 들어오는 것이다.
결국 내 일을 일부 포기하고 시간을 내는 수밖에 없겠는데 난 아직 그러지 못하고 있다.
사실 소설 쓰는 일은 그렇게 자기가 하기 싫으면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의사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의무감 비슷한, 글을 써야 한다는 쫓김이 나를 항상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전 일이다. 국민학교 2학년인 딸아이가 숙제장을 걸쳐들고 와서 점수를 매겨달라고 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아이와 시간을 함께 한다는 즐거운 기분으로 색연필로 동그라미를 그려 나갔다.
그러고 있는데 아이가 느닷없이 『아빠, 점수는 어른스럽게 써주세요』하는게 아닌가. 나는 처음 그말이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해 그냥 건성으로 흘러들었다.
잠시뒤 나는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선생님이 자기가 점수를 매긴 것으로 오해하지 않게 어른 글씨로 보이게 써달라는주문이었다. 내가 점수를 매기고 있는 것임에도 아이는 그게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던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가 어느새 똑똑하게(?) 어른들의 눈치를 미루어 읽을수 있는 수준이 됐구나 하는 걱정스러움이 앞섰다.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들과의 접촉이 더 많은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내가 아이에게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친해지고 이해할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재빨리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도 되어야 하고 작가이기도 해야 하는 이 2중 역할의 중압감을 새삼 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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