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NG] “어린 게 왜 정치 하냐고요?” 국정교과서 반대 나선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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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나

국정교과서 이슈는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작년 10월 교육부가 발표한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에 따르면 오는 2017년부터 중·고교 역사 수업에는 한 종의 국정교과서만 사용된다. 역사 교육의 획일화라는 가치 논란 외에도 집필진과 편찬심의위원 명단의 비공개, 교과서 주문 지체 현상 등 현실적인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자유발언을 하는 학생 참가자.

자유발언을 하는 학생 참가자.

지난 15일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Vol.2’ 집회가 열렸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보고 모인 청소년들은 교복을 입고 “제정해! 폐지해! 존중해!”라는 구호를 외치며 직접 만든 피켓을 들었다.

이날 집회는 다른 거리 집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100여 명의 참가자들은 학교 체육대회 같은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약 3시간동안 집회는 자유 발언, 피켓 콘테스트, 사발통문 작성 등으로 색다르게 진행됐다. 피켓 콘테스트에서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다양한 피켓 ‘장인’들의 솜씨가 펼쳐지기도 했다.

이날 뽑힌 우승 피켓들. [사진 제공=청소년들의 행동(위), 수완뉴스 최명석(아래)]

이 집회는 청소년만의 힘으로 준비해 의미가 더욱 크다. TONG은 이번 집회 프로젝트를 기획한 청소년들과 인터뷰를 했다. 엄재연(속초고 3) 팀장, 석다은(도래올고 2), 이승우(고 1) 학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참여한 중학교 3학년 두 학생은 익명을 요구했다.

기존 집회에 비해 전체적으로 편안하고 열린 분위기에서 진행됐는데요.
(엄재연) 그렇게 느껴졌다니 기쁘네요. 그게 저희 의도였어요. 민주주의란 누구나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시위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누구나 거리낌없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판’을 깔고 싶었습니다.

피켓 콘테스트나 사발통문 작성 같은 색다른 행사가 즐거운 집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 것 같아요.
(엄재연) 먼저 대부분의 시위처럼 저희도 자유발언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긴 시간을 자유발언으로만 꾸려가는 건 저희도 참가자들에게도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지난해 대규모 집회에 참여했는데 자유 발언을 하고 구호만 외치던 분위기가 지루하게 느껴졌거든요. 참가자 모두가 직접 펜을 들고 쓰며 뭔가 행동을 하면서 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주시길 바랐어요. 실제로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해 주셨고요.

사실 청소년들이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엄재연) 저희는 역사란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고, 그렇게 봐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불편한 역사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런 부끄러운 역사도 인정을 하고 배워야해요. 그렇기에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는 더 다양한 관점과 사료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실상 국정교과서로는 이러한 일들을 이뤄낼 수 없잖아요. 올해 내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당장 내년부터는 국정교과서로 공부를 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다시 검정교과서로 바뀐다고 해도 소요되는 시간을 고려했을 때 최소 3년, 최대 5년 동안은 상황이 바뀔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 누구든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했는데 아무도 안하더라고요, 하하. 그래서 저희가 나섰습니다.

(석다은) 국정교과서가 역사를 하나의 시각으로 본다는 점에서도 잘못됐지만 이렇게 된 이유 또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아요. 무엇보다 기존의 3년 이상 걸리는 집필과정을 축소하고 집필진을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교과서가 제작되고 있잖아요. 청소년들의 신뢰감이 매우 낮아요. 또 앞으로 국정교과서로 역사를 배우게 될 후배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역사를 마주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사발통문을 작성하는 청소년 참가자들.

사발통문을 작성하는 청소년 참가자들. [사진 제공=청소년들의 행동]

현장에서 몇몇 행인들이 “학생이 공부나 해라”, ”어린 학생들이 벌써부터 정치에 관심을 가지니 큰일났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어요. 앞서 보도된 기사의 댓글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들이 꽤 있었는데요. 이런 반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석다은) 현장에 있다 보면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저희가 공부를 하는 학생은 맞아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공부하게 될 교과서는 저희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본다는 것은… 글쎄요, 분명히 학생들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고 또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는 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나이가 어리다고 무조건 반대하기보다 저희의 의견도 존중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거리 집회가 두 번 열렸는데, 다음 프로젝트도 있나요.
(엄재연) '국정교과서 반대 청소년 행동 vol.3'을 계획하고 있는데 아직 명확하게 정해지진 않았어요. 10월 말이나 11월 초쯤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프로젝트에서 새롭게 시도해보고 싶은 것이 혹시 있을까요.
(엄재연) 국회의원을 만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엄재연) 일단 저희의 목표는 교과서 국정화 반대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는 건데요. 또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계속해서 많은 청소년들과 행동할 겁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 중에 반대하시거나 걱정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익명) 아무래도 저희 나이가 다들 어리다 보니 반대하시는 분들도 꽤 계시죠. 학생들은 영향력이 없다고도 하고, 어디 문제에 연루되는 것 아니냐고도 하시고. 심지어 어떤 분은 '스펙 쌓으려고 그러냐'면서 나무라시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찬성하시고 지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계세요. 든든하고 힘이 되죠.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익명) 저는 무조건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것만이 '학생다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학생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든지 즐겁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참여하세요. 위험하고 무서운 시위가 아닌, 친구들끼리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토론하는 분위기로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면 좋겠어요.

글·사진=김혜나(정의여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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