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작전상 한발씩 후퇴"-돌파구 찾는 「살얼음 정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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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결로만 치닫던 여야가 다소나마 국면의 완화를 모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신민당이 장외대회를 옥내로 하고 지방 다발개최를 사실상 백지화하기로 하는 등 한걸음 물러서는 자세를 보이고, 개헌안 단독강행불사를 외치던 민정당이 새삼 헌특 시한 연장 가능성과 합의 개헌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여야의 완화 제스처가 잘되면 여야대표회담의 성사로 이어지고 대표회담이 열린다면 헌특 시한연장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적 관측도 나오고 있으나 아직은 속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왜냐하면 여당의 대화 제스처가 개헌안 단독강행 방침에 대한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다분히 홍보적 성격으로 보이는 데다 야당의 일보 후퇴 역시 공권력의 강공 앞에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일단 출로를 열고 보자는 방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민정당>
지난 4일 당직자 회의때까지만 해도 내각제의 조기 단독발의 불가피론을 폈던 노태우 대표와 이춘구 사무총장이 이틀 후에 새삼 「합의개헌」과 헌특 연장론을 들고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노 대표는 8일 『민정당은 합의개헌의 성사를 위해 연말까지 기다릴 수 있다』고 했고 이 사무총장은 일전에 자신이 『헌특은 절대적 기구가 아니다』고 한 것은 『헌특 가동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후퇴성 발언이 민정당 개헌전략의 변화를 시사한다기보다는 강공 일변도의 전략에 전술적 유연성을 갖기 위한 제스처로 보는 해석이 더 유력하다. 말하자면 단독발의 방침이 제기된 후 야기된 여론의 역풍과 부작용을 무마하기 위한 진화제의 성격이 더 짙고 큰 줄거리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민정당은「단독발의, 내년 2월중 내각제 개헌 확정」스케줄을 띄우고 난 후 몇 가지 문제에 부딪쳤던 것 같다. 우선 신민당을 제외한 군소 야당을 끌어들이는데 필요한 여건을 미처 조성하지 못한 듯 하다.
국민당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만섭 총재가 기자회견을 통해 직선제 당론을 재확인했고 민중민주당마저 『한마디 상의도 없었던 것은 불쾌하다』며 내각제 발의단계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유한열 총재가 밝혔다.
심지어 신민당이 국민당과 민중민주당의 일부의원을 공천보장으로 회유하고있고 내부이탈방지에 잔뜩 긴장해 있다.
이들을 끌어들여 3분의2를 확보한다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으며, 굳이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엄청난 반대급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듯 하다.
게다가 『민정당이 너무 성급하게 합의개헌을 포기하는게 아니냐』는 여론 방향도 민정당을 주춤하게 한 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민정당의 내각제 개헌관철이라는 방침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민정당 내에는 당초 「2월설」「6월설」의 양설이 있었으나 대다수 의원들의 견해는 『질질 끌어 봐야 득 될게 없다』는 것이고, 특히 『연말연시를 통해 의원내각제 홍보에 매진하라』 는 등의 당내방침은 여전히 살아있어 잘 안될 경우 합의가 아닌 합법 개헌을 추진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정당은 이같은 기조 위에서 신민당의 서울대회, 대표회담, 헌특 재개문제에 관한 전략을 세우고 있다.
신민당의 서울대회에 대해서는 장소가 옥내건 옥외건 일단 부정적이며 특히 잠실운동장 사용은 생각지도 말라는 입장이다. 잠실 운동장은 이 정부의 상징이라고도 할만한 곳인데 거기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는 식이다.
신민당이 다른 옥내장소를 요구해오면 적절하게 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득이 될 수 있다는 「소리」도 당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장소문제에는 가급적 민정당은 빠지고 당국과 신민당간에 해결해보라는 자세다.
대표회담에 대해서도 민정당은 뭔가를 주고 꼭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이며 말만 꺼냈지 적극적인 추진 노력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더우기 신민당이 서울대회 장소보장이나 선택적 국민투표수용 등을 조건으로 내세우면 어렵다는 입장이며 대표회담도 어려운 판에 청와대 회담은 더욱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결국 신민당이 18일 이전에 국회에 들어오고 신민당이 응한다면 헌특 연장을 의한 대표회담은 기꺼이 응하겠다는 것이며 『대표회담을 하자』는 제의 자체에 선전적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신민당>
여당의 일방적인 강공에 밀려 전략수립에 허둥대던 신민당은 일단 정국을 관망하고 여권의 변화를 봐가면서 작전을 짜겠다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6일의 이민우 총재·두 김씨의 3자 회동이 서울대회를 연내 재개키로 했지만 내심은 「시간벌기」의 고내책인 것 같다.
특히 민정당의 내각책임제 개헌안의 단독발의가 여론으로부터 형편없는 평가를 받게되고 그 때문에 한발 물러서는 듯 하자 이를 야권의 전략수정의 기회로 이용하자는 생각이다.
동교·상도동 측은 여권의 단독발의 유보를 『여권의 속셈이 바뀐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여권의 중대한 변화』라고 수용하겠다는 태도.
이를 바탕으로 신민당 측은 지금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야권작전의 돌파구를 삼을 생각이 농후하다.
그래서 우선 민정당측이 합의개헌 노력과 관련하여 헌특 시한을 연장하려 하고 이 문제를 논의키 위해 대표회담을 하자고 한다면 굳이 피할 필요가 있느냐는 협상론이 은근히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지금은 대표회담을 할 시점이 아니다』 『의원직 사퇴서를 내놓고 무슨 협상이냐』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대안도 없는 형편이다. 또 공권력으로 다시 봉쇄작전으로 나온다면 성사가 무망한 서울대회를 넘기는 명분의 하나로도 이용할 수 있고 나아가 국회나 헌특으로 복귀하여 우선 정부·여당의 강공에서 벗어나는 계기로도 삼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계산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신민당은 8일 △서울대회 연내개최 △지방대회 연기 등 지난 6일 3자 회동의 합의사항을 추인 함으로써 지난주 몇 차례 갈팡질팡했던 당내 혼선을 일단 정리했다.
그러나 잠실운동장에서 옥내집회로 하겠다는 이번 서울대회는 당국이 장소 사용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 충분히 검토되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면 꼭 대회를 치르겠다는 의지는 없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6일 3자 회동이 끝난 뒤 김대중씨는 『당국이 옥내집회는 허용할 뜻을 비춘 만큼 잠실 운동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고 김영삼씨는 『최소한 30만명이 모이려면 옥내로는 잠실운동장밖에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대중씨는 다른 장소로는 일체 양보할 수 없다고 말하고 양순직 부총재 등은 『서울운동장이나 효창운동장 정도라면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더 허가 받기 어려운 도심 쪽의 장소를 제시했다.
물론 신민당은 장소사용 허가문제를 들고 대여협상에 나설 방침이며 서울시장·내무부장관·국무총리 등을 방문, 장소 사용 관철을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그러나 신민당이 얻고자 하는 장소는 당국이 허가치 않을 것이며 혹시 당국이 허가할만한 곳이라면 신민당이 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장소협상이 안될 경우 신민당으로선 연기할 수밖에 없고 아니면 사용허가 없는 상태로 강
행하려다 저지돼 다시 「무산」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민당으로선『타의에 의한 대회무산』또는 『공당의 정당한 옥내집회까지 방해한다』는 등의 공격자료로 여권에 가능한 한 많은 상처와 흠집을 안겨주겠다는 속셈이다. <허남진·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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