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배추」편 돌연 방영취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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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MBC-TV의 간판급 드라머 『전원일기』 (김정수 극본·이관희 연출)의 18일밤 방영분 「배추」편이 돌연 펑크,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는 MBC가 이날밤 신문의 TV안내까지 의뢰했던 「배추」를 방영 직전 돌연 취소하고25일 내보내려던 「올챙이 키우기」를 부랴부랴 교체 방영, 「배추」를 보기 위해 TV를 켰던 시청자들을 실망시켰기 때문.
이유는 「배추」편이 최근의 농촌현실과 흡사한 배추값 폭락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 농정당국의 비위를 거스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원일기』는 농촌사람들의 인정과 애환을 잔잔히 묘사, 6년째 시청률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인기 프로그램. 『전원일기』가 폭넓은 시청층을 확보, 꾸준한 인기를 누려왔던 것은 극심한 소재 제한속에서도 나름대로 농촌의 실상을 거짓없이 그려내려 노력해왔기 때문이었다. 이날 방영키로 했던 「배추」 역시 최근 배추값 폭락에 절망한 농부를 다루되 좌절을 딛고 일어서려는 그네들의 안쓰러운 의지를 서정적으로 영상화한 작품이었다.
따라서 생경한 고발극도 아닌 예술성 짙은 풍자극을 취소한 MBC측의 결정은 드라머의 신뢰도와 환경감시 기능을 스스로 훼손한 처사라는 것이 시청자들의 일반적 의견이다.
『전원일기』는 지난 83년 8월에도 양파값 폭락을 다룬 「괜찮아요」편을 방영했다가 2주일간 방영금지를 당하고 후속편도 극본이 모조리 뜯어 고쳐지는 조치를 겪은바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이 작품을 쓴 여류작가 김정수씨는 『서글프다. 추운날 촬영하느라 고생한 연기자들에게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말썽이난 「배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배추값이 폭락하고 팔데도 마땅치 않자 1년 내내 배추밭에 매달려온 일용(박은수분)은 온몸에 힘이 빠진다.
집에 돌아와보니 처는 궁상맞게도 서울 친척들에게 배추 좀 사달라고 편지를 써놓았다. 일용은 하는수 없이 배추 1백30포기를 한접씩 쳐서(한접은 원래 1백포기) 헐값에 팔아치운다.
일용 어머니 (김수미분)는 본전도 못 건진 배추값을 벌어야겠다며 인근 도회지로 소쿠리장사를 나간다. 일용어머니는 장사한 돈으로 일용에게 『네가 제일 춥겠다』며 털스웨터를사다준다. 속이 상한 일용은 이웃집에서 마을 청년들과 술을 마시다.
대취한 일용은 『양파를 심으면 양파값이, 배추를 심으면 배추값이 폭락하니 나는 땅과 인연이 없다. 땅을 버리겠다』며 울면서 춤을 춘다. 다음날 아침 술이 깬 일용의 뺨에 누군가 뽀뽀를 한다. 아빠를 찾으러온 딸 복길이다. 일용은 복길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그래도여기는 우리의 땅이다. 자식들은 흙의 희망이다. 우리는 고향을 떠날수 없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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