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한아름 안고 돌아간 「아키노」|일본 방문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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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최철주 특파원】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일본에서 코리 붐을 일으키고 13일 쿠데타 소문이 나도는 마닐라로 돌아갔다. 지난 4일 동안 동경에서는 「아키노」 대통령의 발길이 머무르는 곳마다 『코리, 코리』 (대통령의 애칭)를 외치는 젊은이들로 대 혼잡을 이루었다. 그저 20대 뿐만 아니라 40∼50대의 장년들도 「아키노」 대통령을 보기 위해 행사장으로 몰려들었다.
외국 대통령에 대해 일본인들이 이같이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전례 없는 이상 현상이나 특히 정치에 무관심한 대학생들마저 「아키노」 대통령이 명예 박사 학위를 받는 와세다 (조도전대) 대학 강당으로 대거 몰려들어 장사진을 친 채 『코리』를 합창하며 너도나도 L자 (라반=투쟁) 사인을 보내는 열광적인 장면도 있었다.
「아키노」 대통령이 지난 10일 동경에 도착했을 때 일본 신문들은 그의 방일 기간 중 「엔릴레」 국방장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움켜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나카소네」 수상은 이 같은 소문에 아랑곳없이 『「아키노」 정부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으며 일본의 대장성·통산성 및 경제 관계 관리들도 『필리핀의 경제 재건을 위해 「아키노」 대통령에게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대 필리핀 정책을 분명히 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넘어가는 치밀한 일본 외교가 「아키노」 필리핀 정부에 대해서만은 『우선 급한 불을 끄도록 도와주자』고 나서고 있는 것이나 『「아키노」를 우리가 지켜주어야 한다』고 일본 국민이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키노」대통령이 진실된 민주 정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일본의 한 노장 언론인은 설명했다.
일본 정부가 「아키노」 대통령에게 올해 4백억엔의 특별 차관을 포함해 모두 1천억엔의 대 필리핀 원조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은 예상 이상의 선물이었다. 일본은 대규모 원조 제공과 외교 지원 약속은 「아키노」 정부의 정치적 안정 기반을 다지며 필리핀 군부의 쿠데타 음모를 견제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일본이 제공한 엔 차관을 뒤로 빼돌린 사실에 대해 호된 비관을 꺼리지 않았던 일본 언론들은 이번 일본의 새로운 경제 원조 제공에 대해서만은 일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마르코스」 성향을 보인 어느 일본 신문도 「아키노」 대통령 기사를 특집으로 다룰 정도로 시각을 달리했다.
필리핀에 대한 일본의 과거 역사적 죄과 때문에 경제적 유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다는 단순한 타산이라기보다는 민주 이념을 실현하려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 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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