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정국 어디로 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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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국이 긴장하고 있다. 민통련 해산 명령, 민추 대변인의 구속, 14개 노동 단체 해산 명령등 잇단 강경책이 나오면서 여야는 긴강 속에 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민추도 예외 아니다">
여권은 유성환 의원 구속 때부터 좌경·용공 문제와 정국 운영은 별개라는 입장을 취했으며 건국대 사건을 계기로 이런 입장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이 같은 여권의 의지는 민통련에 대한 해산 지시, 한광옥 민추 대변인 구속, 노동부 장관의 14개 노동 단체 해산 명령, 재야 종교인들에 대한 잇단 연행 등 최근 일련의 강경 조치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정국 운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야당이 좌경·용공 의심 각성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가 아니면 이제 와서 어떤 조건을 내세워 헌특 정상화와 대표회담을 논의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이춘구 사무총장은 10일 『신민당이 민통련 해산 등에 불만을 표시하거나 대표 회담 등을 통해 건대 사태 관련자들의 선처를 부탁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있다면 실정을 잘 못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민정당 간부들은 신민당이 무조건 헌특에 돌아오지 않는 한 명분이나 조건을 찾는 대표회담은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이 신민당이 요구하고있는 선택적 국민 투표 논의의 사전 보장이나 전두환 대통령과이민우 총재의 영수회담 주선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쪽으로 당내 분위기가 굳어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야당이 좌경·용공 문제를 직시하고 의회 주의의 룰에 따라 정국에 임하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이미 정국을 제대로 돌리기 위해 묘수를 궁리할 단계는 지났으며 지금은 오로지 좌경문제에 전력 투구할 때라는 인식인 것 같다.
때문에 민정당으로서는 정부 당국의 불법 노동 단체해산·민통련 해산·민추 대변인 구속 등은 당연히 예상된 조치였다고 보고 몇가지 더 후속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극렬·좌경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배후 세력으로 드러나는 조직과 인물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호한 응징을 하게될 것』이라며 『국회 의원도 구속했는데 누군들 구속하지 못 하겠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운동권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이 알면 깜짝 놀랄만한 증거가 발견되었다』며 『민추와 민추를 움직이는 사람들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한광옥 대변인의 구속을 시발로 민추에 대해서도 모종의 조치가 있을 것 임을 암시했다.
이 당직자는 민통련 해산 조치는 좌경·용공 문제에 대한 정부·여당의 단호한 결의를 재확인해주는 것이라면서 좌·검·용공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려는 자세에서 탈피, 체제 수호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
다른 한 간부는 『지난번 유성환 의원 파동 때 「유 의원 원고 내용이 신민당의 당논이냐」는 물음에 신민당이 「그렇다」고 나왔다면 신민당의 해산도 불사한다는 방침이었다』고 소개하고 『이것이 그래도 헌법 질서에 충실한 것 아니냐』고 부연.
그는 『이제 신민당이 재야 단체와의 관계에 분명한 선을 긋고 헌특에 들어와야 할 시점』이라며『헌특에 일단 들어오면 선거법 문제에 대해선 충분히 논의할 자세는 되어있다』고 피력.

<흐려진 합의 개헌 의지>
민정당은 좌경·용공 세력에 대한 정부의 잇단 강공책과 발 맞춰 개헌 문제에 관한 접근책도 차츰 바꿔 가는 기색이다.
지금까지 강조해오던 「합의개헌」이란 의지표명이 눈에 띄게 줄어 들고 『어차피 당대 당의 합의 개헌은 안되는 것이고 재적 3분의2 확보를 통한 개헌밖에 없지 않느냐』는 현실론이 우세해가는 느낌이다. 신민당의 당논 변경으로 내각제를 합의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판단과 함께 더 이상 합의를 위한 정치대화의 필요성이 없다는 강경론이 우세함을 말해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아닌게 아니라 민정당은 내각제 개헌안 통과 시점을 연내냐, 내년으로 미루느냐를 놓고 고민 중이라는 시사가 나오고 있으며 최근들어 연내 통과설이 부쩍 세를 더해 가는 느낌이다.
민정당은 지난 2∼8월까지 야당의 장외 투쟁에 끌려다니다 모처럼 공세로 전환시킨 정국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계산이다.
특히 유성환 의원 구속 이후 신민당이 급속히 위축되어 있고 △급진·좌경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으며 △아시안 게임 이후 안정과 국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제고되어 있고 △동절기가 정치적 소용돌이를 흡수하는데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민정당 내에는 뭔가 합의 개헌을 위한 노력을 국민들에게 좀 더 보여주어야 하고 신민당의 지리 멸렬상이 좀더 나타나야 한다는 점에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하자는 견해가 여전히 있다.

<서울대회 강행 불투명>
정부·여당의 잇단 강경 조치에 신민당은 바싹 긴장하면서 지난 토·일요일에도 계파별 모임을 갖는가 하면 막후 대여 접촉을 통해 「일련의 조치」에 숨겨진 여권의 진의와 향후 정국 구도 파악에 몰두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
유성환 의원 구속 사건 이후 떠돌던 한파설에 촉각을 곤두세워왔던 신민당은 민통련 해산등의 조치를 보고는 『마침내 시작됐다』는 반응들.
특히 상임위와 예결위의 조건 없는 정상화에 이례적으로 순응해가며 대표회담·헌특 정상화 등으로 방향전환을 해왔는데도 민정당 마저 공존의 정치 여유를 주지 않은 채 공권력의 찬바람과 신민당이 직접 맞서도록 방관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 더욱 불길하게 느껴진다는 눈치.
이에 따라 상도동계를 중심으로 한 비교적 온건 세력들은 『우선 이 바람이나 피해 놓고 봐야겠다』는 입장으로 『헌특을 그대피처로 해야 한다』는 방향.
이들은 오는 22일로 예정된 서울 개헌 추진 대회도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며 『마지막 카드를 섣불리 사용하다 오히려 큰 구실을 주게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방침을 견지.
그러나 동교동계는 『어차피 이번 바람이 계획적이고 의도적이어서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면서 『따라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차피 우리에게까지 미치게 될 것이라면 당당히 맞서 싸워야한다』는 태도.
이들은 『결국 이번 바람은 서울 대회의 강행을 통해 정면 돌파를 시도해야 한다』면서 『이 시점에서 헌특에 들어간다 해도 정국 분위기의 개선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분석.
이에 대해 이민우 총재는 10일 『헌특 참여도 저들에게 내각제 개헌 통과의 명분을 주는 결과이며 불참한다해도 그 자체를 구실로 삼을 것이니 이래저래 결과는 마찬가지』라면서 동교동계의 견해를 수용. 그러나 서울대회와 관련해서는 상도동측의 입장을 받아들여 이 총재는 『어떻게 하더라도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부정적인 견해.
이와 함께 이 총재는 11일 상오 김대중씨와 만나 최근의 정국 전개에 대한 야권의 전반적인 대응 전략을 모색할 예정.
한편 이에 앞서 일요일인 지난 9일 김대중씨는 양정직·이중재·노승환 부총재를 저녁에 자택으로 불러 최근 일련의 움직임에 대한 진단과 처방책을 논의.
이 자리에서 김씨는 서울대회 강행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는 한편 헌특에의 무조건참여가 능사가 아니라는 자신의 시국관을 피력했다는 후문.
김씨는 또 10일 상오 자택을 방문한 상도동계의 최형우 부총재에게도 같은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최 부총재는 『앞으로 남은 대여 전략 선택은 정부·여당측의 대응 태도에 달려있는 것』이라고만 설명.
한편 이 같은 당내외의 분위기에 대해 김수한 부총재 등은 『이제는 마주 달려오는 기차가 부딪칠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충돌의 가능성이 거의 확실한 단계』라며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절박한 시점을 그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정치인으로서 현실감각이 없는 처사』라고 주장.
이들은 『따라서 비극을 회피하려면 슬기롭게 대처해야한다』면서 『대표 회담이나 현특 정상화에 당이 명운을 걸고 적극 추진해야한다』고 역설. <박보균·이재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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