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창문 깰 탈출용 망치 안 보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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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14일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 인근 공터에서 전날 화재로 전소된 관광버스에 대한 감식 작업을 하고 있다. 이 사고로 탑승객 20명 가운데 10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사진 송봉근 기자]

사고가 난 관광버스의 출입문이 공사용 방호벽에 막혀 열리지 않았고 탑승객이 탈출용 망치를 제때 찾지 못하면서 사망자가 많았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왜 사망자 많았나
“강화유리 발로 100번 차도 안 깨져”
문도 1.2m 방호벽에 막혀 안 열려

사고 버스는 1차 충돌 후 곧바로 멈추지 않았다. 방호벽에 한 차례 더 부딪힌 후 160m 정도 가다 멈춰 섰다. 버스 출입문은 2차로 오른쪽 방호벽에 가로막혀 열리지 않았다. 직접 버스 창문을 깨거나 밖에서 깬 창문으로 탈출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공사용 방호벽은 한국도로공사가 2011년 말 시작한 언양~영천 구간 도로확장 공사를 위해 설치됐다. 도로공사에 따르면 방호벽을 설치하면 도로 폭이 10㎝ 줄어든다. 또 방호벽과 2차로 오른쪽 차선 사이의 폭이 60㎝ 정도로 좁아진다. 특히 사고구간은 2㎞가량 내리막 이다.

버스를 탈출할 때 사용하는 비상용 망치는 제대로 찾기 어려웠다. 버스회사인 ㈜태화관광 측은 “버스(45인승)에 총 4개의 비상망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생존자 이모(62)씨는 “휴대전화 불빛을 켜서 한참 찾았지만 망치가 안 보였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실제 망치가 몇 개 있었는지, 있었지만 생존자가 제때 못 찾았는지 조사 중이다. 운전기사 이모씨는 “사고 뒤 운전석 옆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지만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소화기 관리를 소홀히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부분이다.

버스 출입문이 앞쪽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사고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의 성능과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승차 정원 16인 이상의 자동차는 차체 좌측면 뒤쪽이나 뒷면에 너비 40㎝ 이상, 높이 120㎝ 이상의 비상구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총 면적 2㎡ 이상, 최소 너비 50㎝ 이상, 높이 70㎝ 이상의 강화유리로 된 창문이 있는 경우 비상구를 설치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예외규정이 있다. 많은 관광버스가 이 예외규정에 따라 창문을 통유리로 만들어 망치로 유리를 깨지 않으면 탈출하기 쉽지 않다. 부상자 김모(62)씨는 “탈출 당시 아무리 발로 차도 창문이 안 깨졌다. 100번을 넘게 찬 것 같았다. 외부에서 깬 창문을 통해 나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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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문이 막힐 것에 대비해 출입문을 대각선 방향으로 앞뒤에 하나씩 설치하고 연기 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게 형광물질로 된 비상용 망치를 4개가 아니라 좌석마다 두 는 등 안전규칙을 고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울산=강승우 기자, 함종선 기자 kang.seungwoo@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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