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궁터 모습드러내는 「공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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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공주 공산성의 쌍수정앞 평지가 백제의 왕궁터임이 확인되고 있다.
공산성을 발굴하고 있는 공주사대박물관 발굴단(단장 안승주)은 지난해 10월30일부터 12월31일까지의 발굴에서 왕궁 연못으로 추정되는 큰규모의 연못을 찾아낸데 이어 올해는 지난 2일부터 건물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갔다.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은 공산성의 꼭대기 부분에 조성되어 있는 약 1천8백평 규모의 평지다. 안교수는 이 터가 서기475년 백제가 한강일대 고구려와의 대결에서 져서 남쪽으로 급히 왕도를 옮길때 일시 왕궁을 지었던 곳으로 추정하고 있다.
안교수는 백제 문주왕과 동성왕이 이곳에 기거했으며 그다음 왕인 무령왕(500년대초) 때 국력을 회복하여 공산성에서 내려와 현재 공산동 일대의 평지에 궁궐을 새로 지었을 것으로 보았다.
연못의 발견은 이곳을 왕궁터로 추정하는 결정적인 단서를 주고있다. 추정 왕궁터의 전면 정중앙에 있는 연못은 윗부분의 지름이 7.65m, 바닥지름이 4.65m고 높이가 2.93m다. 이 연못은 당시로는 왕궁의 연못일수 밖에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클뿐 아니라 그 쌓은 모양도 당시 백제의 무덤에서 흔히 발견되는 돔모양의 천장을 거꾸로 쌓은 축조방법을 보이고 있다.
이 연못 밑바닥에서는 무령왕릉의 벽돌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은 연화문이 있는 기와편이 30여점 출토되었다. 이 기와의 출토는 이 연못이 무령왕릉이 만들어지던 때보다 조금 앞서 만들어졌음을 확인할수 있게 한다.
임류각 터의 발견도 이곳을 왕궁터로 추정할수 있게 하고있다. 임류각은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동성왕22년 궁궐의 동쪽에 높이 오장으로 지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현재 주츳돌 40여개가 발견된 임류각터는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추정 왕궁터에서는 또 백제시대의 주춧돌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무령왕릉의 지석도 같은 사실을 말해주고있다. 무령왕릉지석엔 「매신지위묘」라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은 궁에서 신지, 즉 서서남쪽의 땅을 사서 묘를 썼다는 뜻이다. 무령왕릉은 현재 발굴하고 있는곳에서 1.2m 떨어진 서서남방향에 자리잡고 있다.
무령왕릉 지석의 기록으로 보면 무령왕이 있었던 왕궁도 공산성의 현 발굴지로 볼수 있는데, 안교수는 무령왕은 공산성에서 내러와 무덤에서 볼때 공산성과 같은 방향인 평지에 궁궐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공산성 추정 백제궁터는 백제 이후에도 중요한 군사시설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고려·조선때의 건물 흔적이 토층의 상층부에서 나타나고 있다. 발굴단은 이 토층을 들어내고 그아랫부분에서 백제때의 건물터를 찾아내고 있다.
발굴단은 이 곳에 있었던 건물이 큰 규모로 3동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
공산성의 현 발굴지가 궁터로 확인되면 백제시대 궁터로는 처음 확인되는 것으로 중요한 발굴이 된다. <공주=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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