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애증 뒤섞인 美·프랑스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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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과 유럽 국가들, 특히 프랑스.독일과의 관계에 긴장이 짙게 깔려 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이제 독일과의 우호관계를 복원하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프랑스에는 벌을 주려는 듯하다.

프랑스와 미국의 관계는 애증(愛憎)이 뒤섞인 복잡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라크전이 진행되는 동안 프랑스 군정보당국이 미국의 파트너에게 조용히 중요 정보를 제공했다는 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가 대놓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비난했을 때도 그랬다는 얘기가 있다. 게다가 프랑스에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늘 그래왔듯이 이러한 공감에도 반대감정이 숨어 있다. 예를 들어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 최대의 위협이 이라크가 아닌 북한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이 왜 이라크 침공을 준비했는지 프랑스 사람들은 여러 차례 필자에게 따졌다.

또 하나 이라크 공격에 공감하는 프랑스인 중에서조차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는 꽤나 반감을 갖고 있다. 주된 이유는 프랑스 사람에게 지도층 인사란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부류에 속해 있음이 증명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러한 이상은 프랑스의 교육체제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프랑스 교육체제는 시험점수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해 '그랑제콜'(전문직의 고급 엘리트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랑스의 교육제도)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

그랑제콜은 프랑스에서 대학과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훨씬 더 권위 있는 고등교육기관이다. 프랑스에서 엘리트의 서열은 이런 교육기관을 통해 자리잡힌다. 대부분의 프랑스 고위 관리나 기업 경영인들은 그랑제콜 출신이다.

프랑스의 그랑제콜은 부시를 포함, 최고 지도자를 많이 배출한 미국 명문 대학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은 미국의 몇몇 유명 대학이 순수성을 잃었다고 본다. 말하자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 학교에서 입학 사정이 학생의 능력 평가로 이루어지고 있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필연적으로 부시가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프랑스 사람은 부시가 평범한 학생이었음에도 실력보다는 가문의 연줄로 예일대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 사람에게 부시의 이력은 출생과 동시에 그에게 주어진 특권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물러난 프랑스 왕의 게으른 아들이 폴리테크니크(파리의 이공과대학, 그랑제콜의 하나)에 입학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프랑스 사람은 불법이라고 외칠 것이다. 아울러 현 체제 아래선 그런 사람의 출세가 쉽지 않았으리라고 주장한다. 프랑스 시스템 아래에서는 부시가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에 올랐다 하더라도 결코 당선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만약 미국이 1, 2위 득표자를 대상으로 결선투표를 하는 프랑스식 2단계 선거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면 승자는 앨 고어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와 미국 간 갈등의 한 원인은 미국이 부시를 보는 프랑스인의 이러한 시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갈등은 프랑스가 초강대국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유럽연합(EU)의 지도자가 되기를 갈망한다는 사실 때문에 더 악화돼 왔다. 그러나 동시에 두 나라가 진정으로 적대적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위기 때마다 두 나라는 서로에게 충실하고 좋은 친구였음을 자주 증명해 보였다. 서로 말다툼은 할 수 있다. 그리고 화를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나라 사이에는 결국 우정이 지배할 것이다.

에드워드 M 그레이엄 워싱턴 국제경제硏 선임연구원.
정리=박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