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물두고 물 사먹는 공해지대|포천물장수 "10ℓ에 200원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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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물값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수도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역겨운 냄새가 나서 약수률 사먹어요. 수도물울 끓이면 홍차빛깔이 되고 횐옷을 빨아도 누렇게 변합니다.』
식수를 사먹어야 하는 폐수공해지대.
경기도포천군신북면 삼진아파트 1동203호 채덕광씨(36·상업) 는 「못마시는 수도물」을 허드렛물로나 쓴다며 『서울에서 공해공장을 내쫓기만 하면 뭐합니까. 단속도 안하면서….』 대책없는「서울공장 추방」을 탓했다. 포천군포천읍과 신북 가산면 주민 1만여명. 이들은 이웃 소흘면과 가산면 일대에 들어선 50여개의 공해공장들이 방류한 폐수(하루7백t)가 취수원인 포천천을 오염시키는 바람에 이 물을 이용해 공급하는 수도물을 마시지 못하고 지하수나 물장사로부터 생수를 사마시고 있다.
또 심한 페수악취에 호홉기 질안을 앓고 어린이들이 물에 들어갔다가 피부병을 일으키며 농작물 수확이 줄어드는 고통을 겪고있다.
포천천은 4∼5년전만 해도 가재가 살만큼 깨끗한 1급 상수도원. 그러나 서울의 공해공장 이전에 따라 3∼4년전부터 각종 공해공장이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이제는 미생물도 살지 못하는「죽음의 강」이 됐으며 포천군은 여전히 이 물을 퍼올려 수돗물을 틀고 있다.
◇폐수방류=지난겨울 농한기를 이용해 소흘면 초가팔리 원도공단 D섬유에 잠시 춰업했던김준석씨(39·포천읍어룡2리556·농업)는『공장에서 낮동안 나온 페수를 집 수조에 모았다가 밤이면 포천천으로 퍼내버렸다.』고 고발했다.
현재 이곳에 들어선 공해업소는 피혁공장 7개, 섬유공장 8개, 금속가공3개, 아교제조2개, 석재가공공장 4개등 모두 54개. 그러나 하나같이 페수처리시설을 하지않았거나 시설을 해놓고도 가동을 하지않은채 하루 7백여t의 페수를 그대로 방류하고 있다.
1일하오3시쯤에도 공단안의 피혁가공공장인 D기업이 페수시설을 가동하지않은 채 지름15㎝의 PVC하수도관을 통해 폐수를 그대로 버리고 있었다.
회사측은 『지난5월 환경청에 적발돼 개선명령을 받은뒤 7월말 6천만원을 들여 페수처리시설을 갖추고 이를 거쳐 정화된 물을 버리고있다.』 고 했으나 인근 주민들은 『밤이면 검붉은 페수를 그대로 방류, 악취때문에 길을 걷기조차 힘들다.』 고 하소연.
◇수도물 오염=주민 유정림씨 (49·포천읍신읍리포천빌라203호) 는『횐 빨래는 삶아도 다시 누렇게 된다』 며『올해초부터는 아예 1㎞떨어진 무래골 약수터에서 물을 길어다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고 말했다.
식수난 때문에 신북면 왕방산밑의 무래골약수터와 호변골약수터에는 아침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든 1백여명의 주민들로 장사진을 이루고있다.
◇물장사=다방·음식점등 상가를 대상으로 약수를 플래스틱통에 담아 배달해주는 물장사가 성업중. 「포천물장수」가 된 김철신씨 (28) 는 『물을 많이 쓰는 다방과 음식점을 상대로 1. 5t짜리 픽업차로 매일아침 배달해주는데 한여름에는 20ℓ들이 80여통이 나갔다.』 고 했다.
값은 10ℓ들이 1통에 2백원, 20ℓ들이가 4백원.
◇농작물 피해=10대째 3백년간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이종윤씨(54·소흘면 가팔리341) 는 『하천물을 쓰지못해 땅속 10m에서 물을 퍼내 농업용수로 쓰고있으나 물의 온도가 낮아 벼가 잘 자라지 않는다』 며 『지난해에는 가뭄때 물이 급해 하천물을 썼다가 예년의 60%밖에 수확하지 못했으나 피해보상조차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마을 이장 이종필씨(49)도『2천8백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지난해에는 수확이 3분의1이나 줄어들어 1백여만원의 피해를 보았다.』 며 『마을의 공동수도까지 오염돼 마을 뒷산에 15m깊이의 새 우물을 파 공동수도로 사용하고 있다.』 고 했다. <포천=길진현·양재 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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