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헌특 난파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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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개헌특의가 이렇다할 활동도 못해본 채 난파 일보직전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공청회의 TV생중계여부를 둘러싼 여야이견으로 지난달 26일부터 표류해온 헌특은 5일 하루는 가까스로 정상화되는가 했으나 역시 생중계문제에 걸려 결국 유산되고 말았다. 극적인 다른 변화가 없는 한 헌특이 조만간 재개될 기미가 없는 데다 오는 2O일부터는 아시안게임으로 정치휴식기가 될 예정이어서 여야합의개헌의1차 시한(9월말)은 여야간 별반 협상다운 협상 한번 없이 그냥 넘어갈 전망이다.
○…5일 전체회의를 열기로 간사가 합의해 준데 대해 신민당 내에서는 즉각 반발이 나왔다.
생중계 주장이 의외로 일반여론에 잘 먹혀든다고 판단, 모처럼 대여공세의 호재를 잡아 몰고 나가려는 판에 전체회의 합의는 공세의「리듬」을 깨게 한다는 주장이었다. 공청회에 관한 여야 합의문에『실황 중계토록 방송사에 요청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들어『약속위반』 이라고 기세 좋게 몰아칠 수 있었고 민정당이 아닌게아니라 수세에 몰렸다는 것이 신민당의 판단이었다.
지난 6월 헌특구성에 합의해준 후 민정당 측 페이스에 말려 고전을 면치 못하던 신민당으로서는 두 달여 만에 모처럼 반격기회를 맞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판에 여야간사가 느닷없이 공청회와 별도로 전체회의소집을 합의하자 신민당의원들은「투쟁의 리듬을 깬」자당간사들의 처사에 대해「본능적 의심」과 함께 생중계관철을 주장하며 간사합의를 묵살했던 것.
모 헌특위원은 간사합의내용을 전해듣고『재주는 곰이 부리고…』라는 등의 원색적인 표현을 구사, 간사들에게 강한 불신을 표명.
합의사항에 대한 반발이 정식으로 제기 된 것은 4일 상오의 동교동계 민주인권연구회의 목요정례모임.
동교동계의 이룡희·허경만의원등이 3일 하오 간사회의 합의사항을 듣고 김대중씨에게 찾아가 양해여부를 확인, 사전협의가 전혀 없었던 사실을 알자 4일 상오의 계보모임에서 정식 문제로 거론한 것.
이·허의원은『평소 두 간사의 정치역량으로 보아 합의내용은 전혀 의외였다』고 했고, 사실 이때 당내에서는 간사합의를 놓고『일이 벌어지고 말겠다…』는 식의 세왕세내가 있었다.
이어 열린 당헌특외원회의에서도 동교동계의원들이 주축이 돼『개헌문제가 애들 장난도 아닌 마당에 이런 식으로 무원칙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느냐』고 자당측 간사를 추궁, 결국 원점으로 회귀케했고, 5일 상오의 확대간부회의도 이를 재확인.
○…신민당의 이런 강경방침의 배경에는 당내일부, 특히 동교동계의 헌특불신이 깊숙이 자리잡고있음은 물론이다. 개헌은 헌특에서가 아니라 실세대화나 대중동원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김대중씨의 지론에 따라 동교동계에서는 실세대화가 없으면 아무 것도 진전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자는 속셈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5일의 회의에서 동교동측이『4자 또는 실세회담을 제의해 놓고 있는 마당에 헌특전체회의에 응한 것은 찬물을 끼얹는 격』(김령배) 이라는 발언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이라고 여겨진다.
이에 대해 상도동측의 반응은 대조적이다.
상도동측은『어차피 당대표인 간사의 합의사항인데 지켜줘야 하지 않겠나』(최형우),『간사들을 이렇게 코너로 몰아세우면 앞으로 헌특간사협의가 어렵지 않겠느냐』(김태룡)고 두 간사를 측면 지원했던 것.
또 상도동일부에서는『당이 추한 꼴을 보이면서 이런식으로 헌특을 깨서 어쩌자는 것이냐』고 개탄하는 소리도 나온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는 두 간사들의 계보 내 뿌리가 미약한 점도 한가지 원인이라는 분석.
이중재간사는 동교동계의 부총재이자 민권회의 회장이지만 동교동계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처지이고, 비록 상도동계를 대표하고 있지만 김수한부총재는 원래이철승계.
따라서 두 간사의 두 김씨와의 밀착도가 떨어지고 보스의「정치적 보호」도 없었기 때문에 사태가 더욱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헌특의 장기표류가능성이 높아지자 당내에서는 비판론도 제기되고있다.
무엇보다 자기들이 생중계를 요구하는 근거인 간사합의사항을 이번에 스스로 번복함으로써『필요하면 약속을 지키라고 하고 불필요하면 약속을 깬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됐다는 것. 이제 와서 민정당에 대해 생중계합의를 지키라고 어떻게 요구하겠느냐는 것이다.
○…민정당 역시 현 단계에서는 헌특정상화는 난망이라는 일종의 체념상태인 것 같다. 합의개헌을 위한 타협의 바탕이 전혀 마련돼있지 않은데다 시기도 아직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것이 민정당의 판단인 듯 하며, 현 단계에서 생중계문제에 어떤 타협책을 내어 헌특을 일단 정상화한다 하더라도 양보만 하게될 뿐 전혀 도움은 기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채문식헌특위원장은『개헌을 하라는 것도, 특위를 만들자는 것도, 공청회를 하자는 것도 모두 신민당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인데 이제 와서 TV생중계까지 보장하라는 것은 헌특을 깨자는 것과 다름없다』고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게다가 오는 13일까지는 노태우대표위원의 지방순회 일정이 계속되기 때문에 그 안에 헌특정상화로 공청회를 하는 것이 유리 할 것도 없다는 속셈도 있는 듯 하다. 곧이어 추석·아시안게임으로 연결되는 만큼 어차피 안될 일에 집착을 하기보다는 아시안게임이 끝날 때까지 정치휴식기간을 가져도 무방하다는 생각인 것 같다.
다만 민정당내에는「실황중계」라는 간사의 합의사항에 다소 문제가 있다고 내부적으로 후회하는 기색. 실황중계가 반드시 생중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방송사에 요청토록」한 만큼 결정은 방송사가 할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야당에 생중계주장근거를 마련해준 것은 실책이라는 결과론이다.
이런 여야사정을 종합하면 헌특의 장기공전이 결국 여야에 다같이 정치부담이 되리라는 점에서 정상화를 위한 타협노력은 계속되겠지만 조만간 재개의 가능성은 적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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