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식 로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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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1개 수단이라는 말이 있다. 군대얘기가 아니다. 워싱턴에 진을 치고 있는 로비이스트들.
의회에 등록된 공식숫자는 7천2백 명이다. 그러나 등록되지 않은 로비이스트가 더 많다. 대충 2만 명을 헤아린다.
상하 양원의 의원 한사람에게 40명의 로비이스트가 붙어 있는 셈이다.
로비이스트들이 받는 커미션은 층 층이다. 3유급이 시간당 1백 달러, 1유급은 4백 달러.
하지만 이것은 공정가격일뿐, 테이블 밑으로 건네주는 돈이 있다. 간판을 버젓이 달고 있는 1급 로비회사쯤 되면 마치 건축회사도급 맡듯 법안상정 때 7천 달러, 상위 통과 때 1만 달러, 본회의 통과 때 2만5천 달러를 받는 계약을 맺는다. 물론 일이 잘되면 보너스도 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미국의 농산물수인을 둘러싸고「코리아게이트」로 로비이스트의 정체가 밝혀진 일이 있었다. 이른바「박동선 사건」인데, 그 수준은「걸음마」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미등록 로비활동을 하며 고작 미녀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봉투를 건네주는 식이었다.
미국의회처럼 능수 능란한 정치풍토에서 로비를 하려면 그 수법 또한 능수 능란해야 한다. 그 점에서 대만 같은 나라는 좋은 비교가 된다.
대만의 로비는 이를테면「저인망」식이어서 각계각층을 망라한다. 로비활동도 소방관처럼 불이 났을 때 만 요란법석을 떠는 방식이 아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초청외교도 하고 일상적인 사교도 한다. 정작 불이 나면 비로소 로비의 약효가 나타난다.
미-중공 밀월 중에도 대만과 미국의 구연은 여전했다. 겉으로는 시치미 떼고 속으로는 손잡는 관계였다.
홍콩에서 발간되는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 최근호에 따르면 아시아의 대미 로비이스트는 일본 87명, 한국 39명, 중공 24명, 대만 23명이었다.
우리나라는 일본 다음으로 로비이스트를 많이 고용하고 있으면서도 실속은 대만의 발뒤꿈치도 못 따라가고 있다.
요즘 미국 조야는「디버 스캔들」로 떠들썩하다. 지난해 백악관 비서실문장 자리를 물러난「디버」는 아직도 백악관시절의 연줄을 갖고 있어서 로비 1건당 10만 달러에서 1백50만 달러까지 받는다. 그가 차려 놓은 로비회사는 매상이 4백50만 달러나 된다.
바로 그「디버」가 불법로비와 의회위증에 걸려 어쩌면 재판정에 설 지도 모르게 되었다. 그는 요모조모로 한국로비도 맡아 했다. 우리까지 덤으로 망신을 당하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 정부도 잘한다고 한일인데, 역시「소방관」식의 시끄러운 로비에만 매달린 게 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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