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수출의 새 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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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한-미 섬유협상이 앞으로 4년간의 쿼터 동결로 타결되었다. 이번 협상에서도 어김없이 미국의 당초 주장에서 한 걸음의 양보도 얻어내지 못했다. 우리보다 앞서 매듭지어진 홍콩, 대만의 경우와 대차 없다는 것이 정부 쪽의 위안이지만 쿼터동결의 피해는 우리 쪽이 훨씬 심각할 것이다.
섬유수출 비중이 25%를 넘고 섬유 근로자가 제조업 근로자의 20%를 넘는 우리에게는 13억 달러의 섬유수출 감소가 초래할 직·간접 타격이 여간 크지 않을 것은 짐작이 어렵지 않다.
더구나 이번 협상에서는 지금까지 규제대상이 아닌 실크, 리넨 등도 모두 포함됨으로써 사실상 대미수출섬유는 거의 전부 쿼터규제에 묶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비 쿼터 품목의 개발도 더 이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적어도 미국시장에서는 우리의 모든 섬유제품이 완전한 물량 규제아래 들어가는 셈이다.
우리는 이같은 섬유무역의 인위적 규제가 안정적인 세계 교역증대를 크게 저해할뿐 아니라 무역확대에 필수적 전제인 개도국의 수출과 성장에 크나 큰 타격을 입힐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섬유무역에 관해 여러 형태의 다원적 협정이 일찍부터 실현된 연유도 이런데 있기 때문에 쌍무적 섬유규제는 언제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이번 협상은 미국의회의 이른바 더몬드 법안 재 표결을 앞두고 있어 우리 쪽의 양보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지만 과연 이 새 섬유협정이 기대한 것처럼 미 의회의 보호주의 압력을 덜어 주고 사상 최악이라는 더몬드 법안을 저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오히려 이 악법의 지지자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늘어난다는 것이 외신보도인 점에 비추어 이 새 협정마저 무색해질 더 심각한 충격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로서는 이같은 최악의 경우가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부와 섬유업계가 현명하고 기민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거듭 촉구한다.
섬유수출품목이 모두 물량으로 규제된다면 결국 대미시장의 유지 확대는 제품의 고급화와 다양화·고가화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섬유산업의 기술혁신과 설비현대화, 그리고 연관 기술, 산업분야의 동시적 개발을 불가피하게 요청한다.
미국시장을 둘러싼 일련의 거듭되는 충격이 국내 섬유산업의 현대화 개편으로 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으려면 정부와 업계가 배 전의 노력과 투자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섬유시장의 다변화정책은 더욱 강화되고 섬유 업의 해외투자도 적극 권장되어야 할 뿐 아니라 섬유산업의 신소재 개발도 지금보다 훨씬 강도 높게 권장, 지원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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