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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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열살 남짓해서 떠나온 고향의 추억은 지금도 어찌 그리도 선연한지, 어쩌다 꿈속에서 고향을 본 꿈을 깨고 나면 못내 서운했다. 그때 내 나이 또래의 아이 2명의 엄마인 나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고싶다.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뛰놀던 추억이 어른이 된 오늘날 삭막한 나의 삶에 커다란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 있다.
아파트에서 멀지 않은 곳의 농작지가 바로 그곳. 아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10여분 남짓 달려가면 푸른 논과 밭이 있고, 과수원과 목장이 있어 옛날의 나의 고향 비슷한 정경이 펼쳐진다. 딸아이는 으레 코부터 싸쥐었고 아들녀석은 『얼마나 좋은데 그러냐. 자연 공부도 되고』하면서 내 칭찬을 바라는 눈치다.
모내기철에 다녀왔었는데 그새 벼이삭은 한치나 되게 자랐고, 감자밭엔 이미 고추가 실하게 매달려 있었다.
때깔고운 가지가 손가락 만하고, 연두색 오이의 까실한 가시조차 싱싱해 보였다. 논두렁에선 우리가 발길을 옮길 때마다 개구리들이 도망가기 바쁘고, 아이들은 올챙이에 정신이 팔 있었다. 논두렁에 앉아 바라보는 벼이삭은 잔물결 같고 「이랴 이랴 워워」 소모는 소리도 예전에 익숙한 그 소리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토끼풀꽃 화관을 머리에 얹고 풀 각시 인형을 만들어「빠끔살이(소꿉장난)」에 즐거웠었다. 소꿉상 차림은 언제나 성찬이었다. 달착지근한 맛에 치아가 새까맣게 물들던 오디, 풀섶에 숨어 익던 산딸기, 뾰죽 솟아 오른 죽순의 알싸한 맛. 그뿐이던가 철 따라 우리들의 간식은 산에 들에 그득했었다.
아이들과 논두렁에 앉아 질경이풀 씨름도 해보고 꽃반지도 만들고 두툼한 종이봉지에 개구리밥을 퍼담으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하늘 높을 줄 몰랐다. 자연 속에서 자란 유년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을 이끌고 종종 들로 나가 무지개 빛, 그 아리따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종종 두엄 내음을 맡게 할 것이다. 김향<인천시 남구 구월아파트237동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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