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聲 -추성-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97호 29면

이제 추석이 지났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도 물러났다. 여름 가면 가을이 닥친다. 그 가을은 소리로 먼저 다가올 적도 있다. 가을의 소리는 한자로 추성(秋聲)이다. 북송의 문장가인 구양수(歐陽修·1007~1072)는 가을의 소리를 묘사한 ‘추성부(秋聲賦)’를 적었다. 가을 밤, 책을 읽다가 문득 들은 소리를 묘사하는 그의 문필이 날카롭다.


“사물에 닿는구나, 쟁그렁 쟁그렁, 쇠붙이가 모두 울리는 듯. 적진을 향해 다가서는 병사들처럼, 입에는 자갈 문 채 빨리 달리는데, 호령소리는 오간 데 없고, 그저 사람과 말이 달리는 소리뿐(其觸于物也,??錚錚, 金鐵皆鳴. 又如赴敵之兵,銜枚疾走,不聞號令,但聞人馬之行聲).”


귀에 들린 가을바람, 나뭇가지와 수풀을 헤치며 나가는 그 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깊어가는 가을밤의 스산한 정경이 그대로 묻어난다. 구양수의 귀에도 들렸듯이 가을은 금속이 서로 부딪히는 그런 소리에 가깝다. 수선스러움과 뻗침보다는 숙성과 메마름의 정서를 더 일깨우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기운을 맞아 식생들도 차츰 야위어 간다. 조락(凋落)과 영락(零落)도 곧 이어진다. 한여름 무성했던 잡풀이 고개를 숙이고, 품었던 여름의 습기가 빠져 그 사이를 걷노라면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들린다.


매미 울음소리도 줄기는 확연히 줄었다. 한여름 내내 우렁찼던 소리가 땅으로 빨려든 듯하다. 가지에 매달려 원숙함을 그렸던 도토리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유난히 크다. 다 가을의 소리 아니고 무엇이랴.


떨어지는 잎사귀 하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는 성어가 있다. 一葉知秋(일엽지추)다. 당나라 문인의 시에 등장하는 “一葉落知天下秋(낙엽 하나로 이 땅에 가을이 왔음을 알도다)”에 등장하고, 그보다 더 멀리는 ‘회남자(淮南子)’에 나온다. “見一葉落而知天之將暮(한 잎 지니 해 저무는 것을 알겠다).”


작은 조짐으로 닥칠 무엇인가를 미리 알아보는 일이다. 가을은 길렀던 것을 익히고, 풀었던 것을 거두는 때다. 그래서 옷깃을 조용히 여미고 자성(自省)으로써 내 마음과 영혼을 여물도록 하는 시간이다. 욕망의 분진(粉塵)이 가득했던 대한민국 사회에도 그 가을은 내려앉으리니, 우리 모두 이때 숙성을 향해 안으로 눈길을 거둬봄이 어떠할까.


유광종뉴스웍스?콘텐츠연구소장ykj3353@naver.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