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좌우 파 TV 민영화로 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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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파리=홍성호 특파원】동거 정부(cohabition)3개월만에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프랑스의 좌·우파 대립은 최근 들어 각종 국영기업의 민영화 문제를 놓고 「붕괴의 위기」로 표현되는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88년 대통령선거의 조기실시 설이 나도는 가운데 여론 장악의 가장 큰 수단이라 할 수 있는 TV방송제도개편을 둘러싸고 양측은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각축을 벌이고 있다.
당초「미테랑」의 사회당 정권은 국제적인 방송의 민영화 추세에 따라 국영TV 3개 사 가운데 전국 지방방송망을 가진 FR3을 먼저 민간에 넘기고 이와 함께 채널4의 유선방송인 카날 플뤼스(Canal Pius)와 제5, 제6TV 등을 상업 방송으로 굳히려는 정책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번 선거에서 승리한「시라크」의 우파 정부는 사회당의 이 같은 정책에 정면으로 도전, FR3대신 국영TV가운데 선두라고 할 수 있는 TF1을 민영화하고 제5, 제6TV는 그 등록허가를 취소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우파의 주장은 국가가 방송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며 가장 핵심적인 TV매체부터 민영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우파정부가 내놓은 프랑스 국영방송의 전면 개편방안은 관련매체들뿐 아니라 사회당에도 큰 충격을 던져 주었다.
지난 11일「시라크」 수상이 주재한 각 의에서 TF1매각처분 결정을 내리자「미테랑」대통령은『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단계』라고 화를 냈다.
우파가 내세운 민영화의 목표는「정보의 자유화와 프로그램 제작의 경쟁력 향상, 그리고 자유롭고 생동 력 있는 통신 활용」에 있다.
첫째 목표인「정보와 프로그램제작의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우파 정부는 사회당 정권이 설립한 오트 오토리테(방송심의위원회)를 해체하고 그 대신 CNCL(국립통신위원회)을 새로 만들겠다고 공 표했다. 여기에는 9명의 위원을 두되 3명은 대통령과 상·하원에서 각 1명씩을 선임하고 3명은 감사원·행정 원·대법원 대표 각 1명씩, 그리고 나머지 3명은 앞의 6명이 선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우파 정부의 방안에 따르면 CNCL의 힘은 매우 막강해진다. 즉 CNCL은 TF1뿐 아니라 나머지 국영TV인 앙텐 2와 FR3, 그리고 라디오 프랑스와 국제방송의 대표자를 선임하는 권한을 갖는다. 또 TV채널과 라디오 주파수의 사용허가권, 유선방송 사업허가권도 갖게 되며 방송프로그램 제작회사들(TDF·SDF등)에 까지 직접 간여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우정·전화업무 분야에서 각종 통신수단의 설치·활용까지 장악하여 명실공히 프랑스의 대중통신 문화를 지배하는 기구가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목표는 프로그램 창조성의 발전을 도모하여 경쟁력을 키움으로써 만성적자에 허덕이는 국영방송의 경영을 개선한다는데 있다.
TF1의 경우 86년 현재 장·단기 부채가 6억2천만 프랑(약 8백6억 원)이나 되며 지난 3년 간에만도 1억3천만 프랑 (약 1백69억 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TF1의 연간 예산은 약 25억 프랑(약 3천2백50억 원)으로 이 가운데 광고수입이 15억 프랑 (약 1천9백50억 원), 나머지는 시청료 수입으로 메우고 있다. 광고의 경우 프랑스 TV들이 연간 약 20억 프랑(약 2천6백억 원)의 추가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TF1은 미국의 상업 방송들이 시간당 12∼15분간씩 광고를 하는데 비해 시간당 1분30초의 광고방송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체의 광고 요청을 제대로 소 화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85년의 경우 TF1은 약 3억 프랑(약 3백90억 원) 어치의 광고 요청을 거절한 바 있다.
현재 프랑스의 관계법에 따르면 국가는 국영기업을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민간에 팔아 넘길 수 있다. 즉 자본의 10%는 소속회사 직원들에게 우리사원 주식으로, 40%는 일반투자자들에게, 그리고 나머지 50%는 기업가에게 일괄 매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그룹화를 막기 위한 제도에 따라 명의를 빌어 자본 참여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개인이 한 기업주식의 25% 이상 소유하거나 추후의 기업합병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우파 정부는 이 같은 원칙에 따라 TF1을 매각한 뒤 사실상 이에 종속된 것이나 다름없는 프로그램 제작회사인 TDF·SDF도 민영화하고 유선상업방송인 CP도 같은 원칙을 적용 시켜 체제를 바꾸도록 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일 이들 방송사들이 방침에 따르지 않을 경우는 제5, 제6TV처럼 등록취소의 운명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파 정부는 지난 11일 각 의에서 이미 결정한 매각원칙을 이 달 말께 상원에 넘기고 뒤따라 하원에서도 처리토록 하여 7월말에는 법안 가결투표가 이루어질 것(「레오타르」문화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뒤 대통령의 재결을 받아 늦어도 내년 1월에는 CNCL이 엄격히 선정한 기업에 매각한다는 일정을 짜 놓고 있다.
그러나 사회당 측은 이미 이와 관련,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할 것을 검토 중이어서 그 결말이 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관료적이고 독점적인 프랑스 TV에 대중을 위한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겠다는 높은 이상에서 민영화 구상이 비롯되기는 했지만 그 실천단계에서 사회당은 사회당대로, 우파 측은 또 그들 나름대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속셈이 깔려 있기 때문에 사태 진전은 단순한 민영화작업의 차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정치적인 배경 때문에 TV민영화 작업은 프랑스 동거 정부안에서 또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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