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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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가짜 검사의 사기행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3년 동안 검사와 사법연수원생을 사칭하며 50여명의 미혼여성 등을 울리고 금품을 뜯어 왔다고 한다.
이 사건은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에 1차 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사건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병든 실상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연출되었기 때문에 괴로운 심회를 감추기 어렵다.
평범한 시민이 이 사건에서 1차 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어수룩하게 한 청년에게 속아넘어갔다는 사실의 충격일 것이다.
여자들이 아무리 정신을 못 차리고 살길래 그처럼 쉽사리 자기의 인생을 걸어버리는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여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그럴만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 같다.
검사의 신분증과 훤칠한 키에 준수한 귀공자형 얼굴, 능란한 화술과 세련된 옷차림 등은 마음 들뜬 여인들을 휘어잡는데 좋은 미끼였을 것이다.
그런 요소들은 사실 농락된 여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선망하는 배우자의 조건일 것이다.
또 그 같은 선망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되도록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한 삶을 즐기는 것은 누구나의 기대요 희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같은 조건은 행복의 부수적 조건일 뿐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잊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여인들이 상대의 사람됨과 진실성, 삶의 태도와 사람의 믿음, 또 건강이나 가정의 교육 등 건실한 삶을 영위하는 내용들을 외면하고 단지 지위나 가문이나 학벌 또는 재산정도와 같은 외면적인 요건들에만 가치를 부여하는 현실이 문제인 것이다.
이는 물론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요 우리 사회전체의 가치기준의 병리에 기인한 것에 틀림없다.
판·검사나 의사란 직업에는 사회적 지위나 부가 보장되고 행복도 보장된다는 환상이 우리 사회에 엄존하며 그것이 결혼을 지위와 재물의 거래형태로 타락시키는 현실을 낳고 있다.
물론 결혼도 인간관계의 한 측면이며 계약관계의 일종이긴 하지만 물질숭배의 마력에 의해 사람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상황은 실로 이 사회의 비 건전성을 우려케 한다.
이 같은 풍조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다년간 누적된 우리 사회의 비리들이 초래한 위험한 변리이기 때문에 우리사회의 비도덕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건전하게 사는 것보다는 남을 속여서 사는데 익숙해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 가짜 검사말고도 사람을 속이고 남을 해치며 사는 사람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생각케 한다.
속이려고 들면 속아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인간공통의 약점이긴 하지만 그 약점을 마음껏 이용하려는 크고 작은 범죄적 악의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도사린 현실이 두렵기도 하다.
실제 그런 사기범죄는 법적 맹점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별다른 응징을 받지 않고 더 휭행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현실 속에서 사람을 사랑하고 믿으며 바르게 살려는 선량한 우리 이웃들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손상을 받지 않도록 현명하게 대응하는 노력도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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