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감 유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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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 사람들의 말재주는 못 당한다. 요즘「엔고」시대와 함께 일본에선「하이 터치 산업」「하이 브레드 이노베이션」, 「미감 유창」산업 등 낯선 용어들이 쏟아져 나오고있다.
「하이 터치」(high-touch)는 사전에도 없는 일본식 영어다. 일본 통산상 자문기관인 산업구조심의회가 최근 발표한「21세기 산업사회의 기본구상」이라는 보고서는「하이 터치 산업」을 감성지향형 산업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하이 브레드」(high-bred)는「기품이 있다」, 「교양과 품위가 높다」는 뜻이다. 「하이 브레드 이노베이션」이라면 종래의「첨단기술」이라는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다. 그보다 격이 한 수 높다. 이를테면 그림만 잘 나오는 텔레비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화상이 좋고, 화질도 뛰어난, 무드가 있는 텔레비전을 상상할 수 있다.
「미감 유창」이라는 말은 앞서「하이 터치」나 「하이 브레드」와 모두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말이다. 모양이 아름답고(미),감각적이고(감), 놀이의 「끼」가 있고(유), 창조적(창)이라는 단어를 모아서 그런 용어를 만들어 냈다.
이런 용어들의 내력만 추적해보아도 일본의 산업 변천사를 알 수 있다.
일본은 전후 부흥의 모토로 1950년대부터 60년대까지「중후 장대」형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선박, 시멘트, 제철, 자동차 등 중화학분야의 산업이다.
그러나 1973년 혹독한 석유파동을 겪고 나서 자원이 덜 드는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자원은 없고 기술만 있는 나라가 살길은 그 길 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본의 산업은「중후장대」과거형(올드 라인) 산업을 밀어내고「경박 단소」형 산업으로 변신했다. 정밀기계제품, 그러니까 가볍고(경량화), 얇고(박형화), 작은(단소화)상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반도체(IC)산업은 그 대표적인 예다. 가전제품, 시계, 오디오제품, 컴퓨터 등은 반도체의 고집적화로 부품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경박 단소화가 가능해졌다.
제조 원가며, 수송비가 적게 드는 대신 제품 가격은 고급화와 함께 비싸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경박단소」의 성공은 오늘「엔고」시대를 연출하는 결과가 되었다. 일본은 또다시「뉴 프런티어」상품을 개발하지 않으면 살수 없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좀더 아름답고, 좀더 감각적이고, 좀더 재미있고, 좀더 창조적인 상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낸 것이다. 고급품에서 멋이 곁들인「초 고급품」의 시대로 탈바꿈하려는 노력이다.
일본 경제 번영의 비결이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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