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판치는 外人 드래프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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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로농구 감독은 지난 21일 한국농구연맹(KBL)의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가 끝난 후 "모든 구단이 '작전대로 됐다'고 생각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각 구단이 충분한 사전 연구 끝에 미리 접촉해 사실상 '가계약'을 마친 선수들이 훈련경기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말이다.

이번에도 우수한 기록을 가진 선수가 훈련경기를 무성의하게 해 눈총을 받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 감독은 "경기력이 아닌 연기력 경연장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삼성 썬더스가 1라운드에서 지명한 셸리 클라크와 계약하지 못하는 등 드래프트가 '사전계약'과 '묻어두기' 의혹으로 엉망이 되자 관련 규정과 방식을 바꾸자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가장 구체적으로 대두되는 의견은 자유계약제다.

SBS 스타즈의 고문 자격으로 드래프트를 지켜본 방열 경원대 교수는 "미리 찍어둔 선수를 뽑는 드래프트라면 자유계약제만도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의 이성훈 사무국장은 "어차피 미국 프로(NBA) 선수는 한국에 오지 않는다. 그 아래 수준에서 싼값에 좋은 선수를 고르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유계약제는 구단 간의 돈싸움을 부추기고 선수들의 몸값을 크게 올려놓아 장기적으로 외국인 선수 공급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중소기업도 팀을 운영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해온 것이 KBL의 특징이었다. 즉, 적은 투자로도 대기업 팀과 경쟁해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매력이 리그를 지탱해온 것이다. KBL 관계자들은 중소기업의 투자 의욕을 빼앗으면 리그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결국은 현행 제도와 규정을 유지하면서 보완책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방열 교수는 "유럽 등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선수를 물색하거나 드래프트 횟수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를 바로 계약하지 않고 국내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게 하자는 의견도 있다.

허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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