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국 풀러갈 대 타협이 아쉽다-정치부기자 시국 방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최근 시국의 흐름이 매우 긴박한 느낌입니다. 잇단 교수들의 시국서언 발표, 악화되는 학원사태, 종교계 동향 등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악성유언비어가 나돌고 있는 것도 우려할만한 현상입니다. 유언비어의 양과 질이 그 사회의 건강 도를 반영해준다고도 볼 수 있잖아요.

<비상시국 엔 일치>
이런 난제들을 풀어 갈 수 있는 키를 쥐고있는 여권 쪽에서도 현 상황을 「예사스럽지 않다」고 보는데는 견해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를 진단하는데 있어 정부와 민정당간에 다소의 시각차이는 있습니다 만….
민정당측의 진단은 현 상황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하면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사태」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현재 상황이 위기가 아니라는 사람이 있다면 데려와 보라」고 말하는 간부도 있어요.
정부측 인식은 당보다는 다소 「낙관적」이 아니냐는 생각이듭니다. 즉 현재 사회 각처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두달만 잘 넘기면 그럭저럭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예컨대 교수들의 시국선언도 일과성현상이고 학생데모도 좀 심해지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부측은 사태를 안이한 눈으로 보아서도 안되지만 「과잉반응」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즉각 응징」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인식은 정부와 민정당간에 일치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는데 한 당직자는 이렇게 설명하더군요. 즉 상반기까지는 어차피 「바람」 이 불게되어 있는데 여기에 맞바로 「역풍」으로 맞선다는 것은 코스트가 비싸게 든다는 거죠.
「29일의 당정회의에서 획기적 조치가 나오리라고 보지 말라」고 귀띔해준 한 당직자의 발언도 그같은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가는군요.
그렇다면 당분간은「무책이 상책」이라는 겁니까.
반드시 그런 의미는 아니고 현 안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면서 대책을 세우고 ANOC관련행사가 끝난 후 5월 들어 대책을 실행에 옮기자는 거겠죠.
결국 정부· 여당은 야권의 파상공세에 대해 한편으로는 유연성을 보이면서 그러나 결코 밀린다는 인상을 주지 않겠다는 기조입니다.
민정당의 시국대처는 두 갈래로 볼 수 있읍니다. 한가지는 당정의 면모와 태세를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가지는 학원문제·KBS문제 등과 같은 시국현안에 대한 정책 쇄신입니다.

<당입김확대 요구>
당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당정관계에 시행착오를 겪어서는 안 된다는 측면에서 「무슨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요구는 당내에 무르익을 대로 익은 것 같아요.
결국 「관료로서는 문제해결이 곤란하다」 「당이 보다 정부에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과 요구라고 보여집니다.
이와 함께 당내부도 「실세화」가 되어있지 않은 부분은 과감히 대체해야한다는 소리가 높다고 봅니다.
정책적 차원에서의 쇄신은 일단 사회 각분야에 대해 자율성을 제고시켜 나가면서 대화를 통해, 설득작업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향입니다.
당총재의 귀국(21일) 이후 25일까지 노 대표의 청와대회동이 갖았고 갔다온 후 「노 대표의 기분이 상쾌한 것 같다. 표정이 가벼웠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노 대표는 당의 쇄신 책을 보고하면서 특히 당정관계의 원활화를 위한 애로 제거를 건의했다는 후문입니다.
민정당내에는 어느 자리의 누구와 누구는 안 된다는 등의 강력한 개편주장이 있어요. 어쨌든 5월초에 어느 정도의 개편이 실현되리라는 전망입니다.
민정당의 쇄신건의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라는 거죠.
신민당은 현 시국이 자기네들에게 매우 유리하게 돌아간다고 보고있으면서도 현 상황을 어떻게 결실로까지 몰아갈 것이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읍니다.
김대중씨는 「민주화를 위해 일찌기 지금과 같은 찬스는 없었다」고 할 정도 라죠.
개헌의 「개」자만 언급해도 어떻게 될 것 같았던 상황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죠. 신민당도 국민의 위축심리를 벗어나게 한 것을 큰 수확이라고 여깁디다.
그러나 결성대회 진행과정에서 보듯 재야와의 미묘한 갈등이 있고 시·도 지부행사를 다 끝낸 후에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냐, 다시 말해 이 같은 장외투정만으로 목표접근이 가능하냐 하는 등의 문제에 봉착한 시점 같아요.
그런 문제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아직은 여권을 좀더 밀어붙여 「개헌을 하겠다」 는 말이 나오도록 하겠다는 전략입니다.

<인천대회 크게 기대>
신민당은 밀어붙이는 피크를 오는 5월3일의 인천대회로 보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29일의 정부·여당회의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어요 29일의 당정회의에서 여권의 새로운 시국대응이 나올 가능성을 유의하고 있는 거죠.
인천대회를 피크로 잡은 것은 그 며칠후인 5월7일로 예정된 「슐츠」미 국무장관의 방한과도 관련이 있다는 관측입니다.
신민당으로서는 앞으로 재야와의 협조관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큰 과제인 것 같아요.
신민당은 대회의 열기나 청중동원을 위해서는 재야의 참여가 필요한 반면 통제 안 되는 그들의 독자행위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이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게 됐습니다.
민통련의 하부조직에 대해서는 신민당은 말할 것도 없고, 김대중씨의 얘기도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 다죠.
서명실적 저조도 골칫거리죠.
지난 20일 한 의원이 이런 계산을 하더군요. 4월말 서명목표인 1백만명을 채우기 위해서는 지구당별로 2만∼만5천명씩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하루 한사람이 20명을 받는다고 볼 때 남은 10일간 한 지구당이 2만명의 서명을 받자면 1백명이 뛰어야하는데 1인당 만원을 준다고 해도 하루1백만원이 든다는 겁니다. 이렇게 돈을 써가며 서명 받을 지구당이 없다는 거죠.
그렇다면 가두서명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크겠네요.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도 가두서명은 재야가 강력히 요구하교 있는 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두서명에 들어갈 경우 정국에 영향이 크겠죠.
결국 시국의 근인 은 개헌문제에 귀착되는데 정부·여당의 시국대책이 내주에 건의된 후 여야협상이 재개될 수도 있겠죠.
민정당내에는 내각책임제 개헌론과 함께 시기도 앞당길 필요가 있다는 등의 사견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읍니다만 공식적으로 「88년까지 호헌, 89년 개헌 논의」의 방침에 불변입니다.
특히 「민정당도 무슨 안이 있어야한다」는 당일 각의 「성화」가 있지만 언제, 어떻게 한다는 것을 공표 하는 것은 통치권 누수 때문에 곤란하다는 거죠.
민정당은 그래서 헌법특위가 구성되면 공청회 같은 행사를 통해 당의 헌법입장을 부각시키겠다는 생각입니다.

<개헌연구 있어야>
신민당 안에도 동교·상도계 할 것 없이 상당수의 의원이나 당원들 사이에 「개헌 내용에 대해 전반적인 연구가 있어야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개인적으로 내각 책임 제를 선호하는 의원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여권이 내년에 개헌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텐데 대통령직선제만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거죠.
김상현씨가 최근 김대중씨에게 「직선제가 유리하겠지만 그 주장으로서는 정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테니 고려하라」고 건의했다는 거죠. 이 말에 김대중씨는 크게 화를 냈답니다.
범야권을 보면 △직선제개헌(신민당) △민중헌법제정(재야) △민주화를 위한 개헌(종교계)등으로 개헌안 내용이 세갈래라고 볼 수 있죠.
난국의 타개를 위해 대통령과 두 김씨 간의 3자 회담을 기대하는 소리가 있으나 아직은 실현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물론 민정당내에는 김영삼씨와의 대화는 「있을 수 있다」는 견해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진 않습니다.
결국 개헌문제에 관한 여권의 신축성과 야당의 현실적 수요가 맞아 떨어져야 협상이 가능해지고 협상이 있어야 시국도 풀릴 수 있을 텐데 아직은 「대타협」을 위한 여야간의 열의나 좋은 동기가 약한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정리=안희창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