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던 303호가 장부상엔 302호…보증금은 어디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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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부터 서울 송파구의 한 다세대 주택 ‘303호’에 세들어 살던 박모씨는 맞은 편 ‘302호’가 법원의 공매절차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동산등기부 등본을 떼어보고 깜짝 놀랐다.

3년째 303호라고 믿고 살아왔던 자신의 집이 등기부상 302호였던 것. 계약서와 일치하는 등기부상 박씨가 임차한 303호는 박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 살다 이미 공매절차에 들어간 현관 표시상 ‘302호’였다. 자신이 살고 있던 표시상 '303호'(등기부상 302호)의 등기부등본도 찾아본 박씨는 낙담했다. 여기엔 자신의 임차권에 앞서는 근저당권(채권최고액 65억원)이 설정돼 있었던 것. 중개업자 이모씨가 계약 당시엔 등기부상 303호의 등기부등본을 떼 줘 그런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부랴부랴 표시상 ‘302’호에 대한 공매절차에서 보증금 9500만원으로 채권을 신고하고 배당신청을 했지만 박씨는 배당에서 제외됐다. “실거주자가 아니다”라는 이유였다. 보증금을 찾을 길이 막막해진 박씨는 중개업자 이씨와 한국공인중개사협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2단독 임수희 판사는 지난 11일 이씨와 협회가 38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임 판사는 “이씨는 건축물대장ㆍ등기부상의 표시와 현관문 표시가 다른데도 이를 간과한 채 부동산을 중개했다”며 “이씨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이씨가 가입한 공제를 운영하는 협회는 공제금을 박씨에게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부동산 계약 당사자로서 박씨에게도 부동산의 현황과 장부상 표시 등을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보고 이씨 등의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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