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백과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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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은 영국의 「액턴」경이 했다. 역사가며 철학자인 그의 말은 지난 1백여년 동안 수많은 「절대 권력자」들이 실증해 보였다.
그러나 「액턴」경의 계시를 누구보다 실감 있게 증명해 보인 권력자는 역시 「마르코스」다.
새삼 그의 재산 목록이나 재산 규모를 얘기할 흥미는 없다.
이제는 식상감마저 든다.
그러나 「마르코스」는 무슨 재주로 그처럼 「절대적으로」부패할 수 있었을까. 미국의 한 신문은 그를 지칭해 『부패의 백과사전』이라고까지 했다.
그의 축재 과정을 보면 「절대 권력」이 유일한 재주였다. 우선 부패의 연대기를 따져 보아도 알 수 있다. 1972년부터 1981년까지 10년 동안이 축재의 절정기를 이루었다. 「계엄 통치」 시절이다.
그의 「부패 백과사전」은 몇가지 항목으로 대별할 수 있다.
가장 큰 항목은 커미션 (수수료)과 리베이트 (사례금). 일본의 이또쮸 (이등충), 마루베니 (환홍) 등 10여개의 기라성 같은 기업들이 하나같이 커미션과 리베이트를 바쳤다.
심지어 주일 필리핀 대사관 건물을 사고 파는데도 5%의 커미션을 요구하고, 또 받았다는 문서가 발견되었다.
둘째는 독점권 독점. 「마르코스」의 친척들은 코코너트, 설탕, 바나나 같은 농산물 유통판매권을 독점했다.
세째는 이권 사업 참여. 필리핀의 한 석유 회사가 벌인 석유 개발 사업에 비밀리에 투자하고, 나중엔 그 투자 분의 주식을 특정 회사에 팔았다. 그 회사의 사장은 「마르코스」의 친척이었다.
네째는 뇌물. 한 예로 필리핀의 핵발전소 건설과 관련해 미 웨스팅하우스사는 약 8천만 달러의 뇌물을 주었다.
다섯째는 부실 기업 떠넘기기. 빚더미 위에 쓰러져 가는 부실 기업을 정부에 떠맡기게 한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흥하는 예다.
여섯째는 주식 투자. 「사들레미」 (sadlemi)라는 가명의 회사가 있는데, 그 이름의 영문자를 거꾸로 읽으면 「이멜다」다. 이 가명의 회사는 여러 회사의 주식을 쥐고 주가를 조작하는가 하면 소유권까지 장악한다.
일곱째는 국고 횡령. 필리핀의 정부 보유「금」은 매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계엄령이 선포된 다음 해인 1973년엔 금 보유고가 45%나 줄어든 경우도 있었다. 필리핀이 해마다 생산하는 「금」도 간 곳이 없다. 지난 2·7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엔 정보 기관이 중앙은행의 허락 없이 돈을 마구 찍어내기도 했었다.
옛 법언에도 『권력은 법 이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경구가 있다. 권력이 법을 초월하면 그것이 바로 부패의 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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