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덜 깬 마르코스, 미에 불평 전화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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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와이로 망명한지 20여일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과 「이멜다」 여사는 한숨과 비통 속에서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마르코스」는 놀랍게도 자신이 완전히 끝장났다는 사실을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는 수시로 미국무성이나 미국 내 저명 인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비인도적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 등의 불평을 털어놓는가 하면 필리핀 내의 추종자들에게도 때때로 전화를 걸어 「코라손」 대통령의 약점을 들춰내라』고 「지시」하고 있다.
「마르코스」는 또 하와이 최고급 주택가인 마노아 지역의 대 저택에 세를 들었다. 이 저택은 거실·식당·침실 3개에 2개의 목욕탕, 차고 2개 등을 갖춘 해변가의 호화 주택으로 대지가 2천1백여평이며 월세만도 1만달러 (약 9백만원)에 달한다.
「마르코스」의 경호원들은 『「마르코스」일가가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근처에 간신히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이는 「마르코스」일가에 대한 주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
한편 「이멜다」는 각국의 유명 인사인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 음식은 맛이 없어 못 먹겠다』『파리로 쇼핑 가고 싶다』는 등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이멜다」의 전화를 받은 텍사스의 한 저명 인사는 『그녀는 쇼핑 얘기만 나와도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마르코스」 부부가 감히 거리에 나돌아다니지 못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베르」전 참모 총장은 하와이 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는 경호원들과 함께 「필립스」라는 가명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좌석을 예약, 한끼에 86달러 (약 7만7천원)짜리 요리를 즐기기도 하는 등 「마르코스」에 비해 개방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호놀룰루 시장 「프랭크·파시」는 「마르코스」 부부가 인근의 한적한 길리건 섬으로 이주, 조용히 「은둔 생활」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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