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속어들 세태풍자 진하다|경희대 서정범교수, 84년이어 두 번째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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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대학가에 「참새」 「개구리」시리즈 등의 수수께끼식 속어가 계속 크게 번지고 있다.
이들 속어는 대학생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한편 사회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를 담고 있다.
84년에 이어 두번째로 대학가의 속어를 조사한 서정범교수(경희대·국어학)는 최근 발표한 논문「수수께끼식 속어를 통해서 본 대학생들의 의식세계Ⅱ」(『학생생활연구』제3호, 경희대간)에서 이를 24가지 유형으로 분류,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요즘 대학생들이 즐겨 쓰는 퀴즈형 속어는 대략 1천38가지.
84년에 5백3가지, 지난해에 5백34가지가 수집됐다.
숫적으로는 준말」(2백26가지), 「수수께끼」(1백62가지), 「식인종」(77가지), 「명사」(63가지), 「참새」 (60가지)시리즈의 순.
지난해에는 「죄와 벌」 「유언」 「부자」 「동물」 「바보」 「성」시리즈 등 6가지 유형이 새로 조사, 수집됐는데 속어의 말투가 거칠어지고 비판과 풍자의 강도가 세어진 게 특징. 성과 관련된 시리즈도 44가지로 크게 늘어났다.
2백26가지에 이르는 준말(약어)시리즈는 짧은 표현에 현실이나,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야극장」(심심하고 야한 애들이 극성스럽게 드나드는 장소),「말단사원」(말 잘 듣는 단계의 사원), 「경로석」(경건한 마음으로 노인을 쳐다보는 자리),「E·T」(이번 학기 탈락자), 「결혼」(결국 혼이 나는 것)등의 그 예.
격언 및 속담을 현대적으로 각색, 사회현실을 꼬집고 있는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졸업정원제에 대한 불만으로 다음과 같이 개작했다. 『나는 자랑스런 졸업정원제 앞에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눈 귀를 다 돌려 커닝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신훈민정음 서문은 서구문화에 대한 무분별한 추종의식을 풍자하고 있다. 『나랏말씀이 미귁에 달라 문자와 서르 소못디 아니홀씨 줏대없는 백성이 미제문자를 좋아하더라.』
현실에 대한 고발과 풍자도 더욱 날카로워 졌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유는 「매연 때문」이며, 외제타이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약은 「바퀴벌레」라고 풍자하고 있다.
춘향의 죄는 「혼인신고 미필 죄」 심청의 죄는 「인간시장 개설 죄」라는 등의 「죄와 벌」시리즈는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 중의 하나. 역사적인 인물을 회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성에 관련된 시리즈도 최근 급격하게 늘고있다. 신혼여행에서의 에피소드, 임신, 출산에 관련된 것들이 많다.
적대관계를 보이는 두 동물을 대비시켜 약한 동물의 저항의식을 나타내는 것이 「참새」와 「생쥐」시리즈. 생쥐가 개들에 쫓겨 전보대에 올라가 「개판이군」한다거나, 한 생쥐가 소등에 올라가자 밑에 있는 쥐가「콱 밟아버려」하는 식이다.
「명사」시리즈는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발음에 의탁, 현실을 꼬집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바람둥이는「섹스피어」, 세계적인 자선가는「주자」로 불린다.
한편 70년대부터 생긴 비인간적인 「식인종」시리즈가 77가지, 「드러큘러」시리즈도 l7가지에 이르는데 산업화 및 도시화에 따른 인간정신의 황폐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서교수는 『삶에 대한 희화와 자조가 짙게 깔려있다』고 말한다.
서교수는 『외국과 비교해서우리나라 대학사회에서만 속어가 독특하게 수수께끼시리즈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대학사회가 그만큼 경직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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