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치 급락을 막아야 할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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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호 30면

최근 브렉시트 이후 엔화 가치가 급등하면서 아베노믹스가 실패로 돌아간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다. 그렇지만, 나는 일본이 그렇게 오랜 기간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더 궁금하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1980년만 해도 일본이 한국보다 거의 5배 정도 잘 살았지만, 이제는 두 나라의 소득 격차는 거의 없다. 실제로 요즘 일본 여행을 가면, 교통비만 좀 비싸다 싶을 뿐 먹거리나 관광지 입장료는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우리 경제가 그간 빠르게 성장한 덕도 있겠지만, 일본이 20년 넘게 제자리 걸음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빠르게 추격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일본은 저렇게 긴 세월 어려움을 겪게 됐을까. 가장 직접적인 답은 역시 ‘자산 버블 붕괴’에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의 이코노미스트 리처드 쿠는 1990년 버블 붕괴 이후 날아가 버린 자산가치가 1500조 엔에 이른다고 추산한다. 1990년 일본 명목 국내총생산이 449조엔이니, 대략 3년 치 국내총생산(GDP)이 날아가버린 셈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자산 손실은 경제 주체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예를 들어, 15억원짜리 집을 보유한 가계를 생각해보자. 이 가계는 10억의 빚과 자신의 순자산 5억을 투입해 이 집을 구매했다. 담보인정비율(LTV) 66% 수준이다. 그런데 집 값이 반 토막 나면? 이 가계가 보유한 집 값은 7억5000만원이 됐고 가계의 순자산은 -2억5000만원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가계가 할 일은 하나 밖에 없다. 열심히 저축해 빚을 갚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이런 일이 경제 전체에서 벌어진 데 있다. 모든 소비자들이 빚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인다면, 이는 곧 기업들의 매출 둔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기에, 소비자들의 지출 감소는 곧 기업들의 실적 악화로 연결된다. 견디다 못한 기업이 대규모 해고에 나서면 더 큰 소비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결국 일본 근로자들은 장기간에 걸친 임금 동결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1995년부터는 임금이 깎이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 도달한 다음부터는 일본 경제의 ‘희망’은 사실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2013년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가 겉보기에는 큰 성과를 거둔 것 같지만, 브렉시트 등 해외 여건이 조금만 나빠져도 금방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배경에는 이런 ‘끝없는 악순환’이 있었던 셈이다.


우리는 일본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산시장에 버블이 생기지 않도록 경제를 잘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펀 전 연준(Fed) 의장이 회고록에서 뼈아프게 밝혔던 것처럼 “버블은 꺼진 다음에야 버블이었음을 알게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버블이 생기지 않도록 자산시장을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자산 시장이 붕괴될 위험이 부각될 때에는 신속하게 통화 및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 전반적인 악순환이 출현하는 것을 막는 ‘위기 대응 계획’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홍춘욱키움증권 수석 연구위원blog.naver.com/hong8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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