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궈 전격 訪美… 中 '북 - 미 대화' 해결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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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관에 봉착했던 북핵 문제가 중국의 외교적 노력 덕분에 대화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중국식 실용주의 외교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북한엔 미국의 강경한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미국엔 대화의 실질적 진전이 중요하다는 점을 전달해 얻어낸 결과로 보인다.

중국은 7월 초 왕이(王毅).다이빙궈(戴秉國) 두 외교부 부부장을 미국과 러시아에 보내 북핵 문제를 조율한 이후 지난 12일 다시 다이빙궈 부부장을 북한에 보냈다.

戴부부장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친서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했고 북한을 다자회담의 틀로 끌어들이는 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戴부부장은 이어 17일 워싱턴을 직접 찾아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만나 다시 胡주석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따라서 다이빙궈를 사이에 두고 부시 대통령과 金위원장이 대화를 나누는 것과 다름이 없는 모양새다.

다이빙궈는 북한 측에 미국이 계산하는 '평화적 해결'의 속뜻을 자세히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즉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반대로 북핵 시설에 대해 군사적인 공격은 하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인 봉쇄정책과 압박으로 북한 정권을 고사(枯死)시킬 수도 있다는 미국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했으리라는 관측이다.

그리고 '다자회담의 틀을 유지하되 실질적인 북.미대화 진행'이라는 방안을 북한 당국에 간곡하게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북.미 양자 직접회담 불가'라는 원칙적 입장을 우회하고 러시아.일본 등 주변국 모두 북한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선 모두 이해 당사자인 점을 감안해 북.미대화 고집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일단 북한을 다자회담의 틀로 끌어들인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에도 '대화의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평양 달래기'의 겉모습과 달리 북한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분석이 조금씩 흘러나와 주목된다.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존 타칙(헤리티지재단)연구원은 17일자 '아시안 월 스트리트 저널'에서 베이징(北京)은 대북 정책을 둘러싸고 부처별로 상이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외교부는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 평양과 다소 거리를 두고자 하는 입장이지만 군부는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중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타칙은 지난 7월 4일 워싱턴을 방문한 王외교부 부부장이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에게 "중국은 미국의 정책 목표에 북한의 정권교체를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지지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외교 당국자들은 중국 측의 이같은 발언을 '중국은 미국이 직설적으로 북한의 정권 교체만 언급하지 않으면 북한의 정권교체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물밑에서 진행되는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들은 북.중 관계가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변화를 겪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김정일과의 면담을 성공적으로 이끈 戴부부장에 대한 관심이 베이징 외교가에서 부쩍 높아지고 있다. 戴는 1941년생으로 중국 구이저우(貴州)에서 태어난 소수민족 토가족(土家族)출신이다. 쓰촨(四川)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한 뒤 외교부에 들어왔다.

줄곧 소련과 동유럽을 상대해 왔으며 소련.동유럽 국장을 역임하면서 공산권 지도자들과 두터운 친분을 맺었다. 특히 97년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맡은 뒤에는 북한 고위층과의 교류가 잦았다.

김정일 위원장의 두 차례 중국 방문 때에는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자격으로 그를 밀착 수행해 金위원장과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그는 이번 방북으로 북핵에 관한 한 중국 외교부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베이징=유광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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