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요의 당당한 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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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광요싱가포르수상의 9일 미의회연설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는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에 미국 보호주의에 대응할「떳떳한 논리」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평가될 수 있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국 관리들이 미국당국자와 통상문제로 자리를 같이할 때는 늘 수세적 입장에서 변명하는 궁색한 모습을 피할 길이 없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개방된 시장을 제공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왜 시장을 열지 않는가, 왜 덤핑을 하는가, 왜 불공정 행위를 하는가 식으로 공박하는 앞에서 우리는 경제규모의 차이, 성장단계의 차이, 기술의 낙후성 등 떳떳하지 못한 이유를 들어 선처를 호소하는 몰골을 보였다.
미국 관리들은 지적소유권문제만 나오면 남의 특허상표 저작권을 침해 하는 것은「도둑질」이라는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이런 고압적 태도 앞에서 워싱턴을 방문하는 우리 정치인들은 수년째 지겹지도 않은지 「우리의 외채부담, GNP의 6%에 달하는 국방비지출」등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미국측의 이해를 호소해왔다.
그러나 최근 신임 통상대표「유터」가 공개석상에서 말했듯이「우방국의 안보는 통상문제와 별개문제」라는 미국측 입장 앞에 그런 논리는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런 불균형한 대화의 장에 이광요수상은『시야를 넓히라』고 일갈했다. 한국을, 싱가포르를, 대만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의 이익을 의해서 미국은 시장을 열어놓고 있으라고 타이른 것이다.
2차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자유무역체제는 개발도상국에 성장의 희망을 주고 한때 사회주의 경제체제에 매료되었던 신생국들을 되돌려 놓고 있지 않느냐는 그의 주장은 특히 소련과의 대결의식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에게 솔깃했을 것 같다.
그와 같은 논리가 보호주의 열풍에 휘말러 있는 미국의회나 국민여론을 되돌리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물론 망상이다. 무역적자누증에 대해 미국인이 보이고 있는 히스테리는 이미 그 정도를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수상이 제시한 미국보호주의 경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은 앞으로 아시아관리들이 미국당국자들과 마주앉을 때 지금까지와 같은 꿀리는 자세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당당한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
월남전 직후의 암담했던 위기를 극복하고 이제 태평양을「미국의 호수」라고 부르게 된 미국의 여유있는 입장은 미국 혼자의 힘으로 확보한 것이 아님을 이수상은 일깨워준 것이다. <장두성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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