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40년만의 남북 민간인교류 실현의 뜻 대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제한된 규모의, 제한된 지역의 방문이지만 분단 40년 만에 남북민간인의 첫 교류를 실시키로 한 남북적 간의 합의는 분단사의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관계 전문가의 긴급대담을 통해 이번 합의의 의의와 남북대화의 전망·영향 등을 폭넓게 살펴본다
참석자
이호재<고대교수·정치학>
김달구<전남북적십자회담대표>
▲김 전대표=70년대 처음 적십자회담을 시작할 때 그 배경은 70년에 나온 8·15선언 이었읍니다.
60년대의 고도로 긴장된 남북관계를 선의의 경쟁관계로 전환하자는 것이 이 선언이었죠. 그로부터 1년 뒤인 8·12「이산가족 찾기」가 제의되고 그 자그마한 결실이 14년10일만에 고향방문단 교환방문으로 구체화 됐읍니다. 70년대 남북대화 참가자로서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이 교수=지금까지 대표들만 왔다갔다했으나 이번에는 대표가 아닌 국민들 특히 분단과 전쟁의 상처가 깊고 증오 불신이 깊은 이산가족들이 감정보다 공존의식을 내세우며 서로를 방문한다는데 큰 의미가 있읍니다.
14년 만에 이뤄진 대단한 결실이지만 아직도 남북관계의 수준이 인사교류 정치협상이 있던 6·25이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정치 군사상의 기본문제도 논의돼야 하겠죠.
▲김=독일의 경우도 동·서독 기본조약체결은 그리 오래 전이 아닙니다. 우리가 독일에 비해서는 아쉬운 점은 있으나 개방의 시발점을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읍니다. 독일은 6·25와 같은 민족적 비극도 겪지 않았잖습니까.
▲이=물론 이번 남북합의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 늦었다는 아쉬움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분단은 독일처럼 국제적 요인도 있으나 이제까지 최악의 군사 대결형태로 남은 것은 우리 탓이 컸죠.
독일보다 빨리 분단극복을 할 수 있는 여건에 있었는데 이런 상태로 남은 것은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반성해보는 것입니다.
▲김=「첫술에 배부르지 않다」는 생각이 우선 떠오르는군요.
14년 만에 이런 성과를 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번 합의를 시발로 분단 후 처음으로 인적교류가 시작되는데 저는 남북이 오랫동안 이질적 체제 하에 살았기 때문에 부작용을 낳지나 않을는지 걱정이 됩니다.
앞으로 남쪽 북쪽 모두 민족의 예지와 슬기를 살려 부작용이 나지 않도록 해 나가면서 교류가 지속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읍니다.
한꺼번에 많은 것을 이루려고 욕심을 내기보다는 이번처럼 비록 소규모이지만 「스텝 바이 스텝」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야 부작용을 극복, 지속성을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동감입니다. 휴전 이후 32년 간 군사대치를 계속해온 것은 냉전의 탓도 있읍니다만 서로간의 정보부족 때문입니다.
지금도 서로가 남북교류를 추진하면서도 불신과 의심을 갖고 상대방을 대하고 있읍니다.
서로를 호전적이라고 보고 사람이 아닌 「도깨비」라는 관념을 갖고는 대화나 교류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호 부신을 불식할 수 있는 정보가 오가야 신뢰의 기반이 마련될 것입니다. 이번의 교류합의는 이런 정보교류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보고싶습니다.
서로가 자신의 좋은 점보다 약점을 많이 보여줘야 신뢰기반이 튼튼해진다고 생각됩니다.
▲김=정보의 교류가 중요하다는데 동감입니다. 최근 평양시를 개발하는데 70년대 서울의 강남개발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읍니다.
서울이 한강을 중심으로 먼저 강변도로를 건설했는데 평양도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옛날 우리의 잠실 같은 동 평양을 개발, 아파트를 건설하고있다고 합니다.
들이 최근 고속도로 건설에 열을 올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것들이 과거 70년대 여러 차례 만나 정보교환이 이뤄진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의 실상을 파악해야만 신뢰가 생기고 그와 같은 신뢰의 축적을 기반으로 평화통일의 추진도 가능할 것입니다.
북한측은 미군철수·10만 이하 군 감축 불가침 협정 등을 하면 막 바로 긴장완화가 된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말로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우선 물자·인적교류를 통한 신뢰의 축적이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이번 합의의 의의는 큽니다.
▲이=이번 교류를 계기로 북한이 참다운 의미에서 외부세계로 나가는 첫 번째 경우가 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겠군요. 북한측이 어떤 사람들로 방문단을 구성해 보낼지는 알 수 없지만 고향방문단의 서울방문은 단순한 남북교류의 차원을 넘어 북한주민이 처음으로 외부세계를 본다는 뜻이 있읍니다.
북한은 동구권에 유학생을 보내지만 한정 선발된 사람에 국한돼 왔으며 이번에 본격적인 「바깥 출입」을 하는 셈입니다. 상당한 충격을 받게되겠죠. 사실 본격적인 교류를 추진하자면 이번 일을 계기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교류를 확대해야 합니다.
소련의 「고르바초프」등장 이후 북한은 미그23기를 사들였는데 그에 따라 우리도 대응태세를 강구할 수밖에 없잖아요. 여기에 따른 낭비가 얼마나 큽니까. 모두 서로 불신하고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니까 대화를 하면서도 구비경쟁을 벌이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입니다. 결국 상대방에 대한정보부족 때문이죠
남북한이 서로를 이중성을 두고 본다면 그렇지 않다 하는 정보를 이번 교류를 통해 얻어야 할 것입니다.
▲김=물론입니다. 남북한 인적교류는 선의의 것이 돼야합니다
우리는 이산가족으로 고향방문단을 보내는데 북한이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지요.
지난 5월 본 회담 때 온 북한사람들이 카메라를 대부분 들고 왔는데 주유소를 많이 찍어갔다고 합니다.
주유소는 북한에서 군사시설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만 앞으로의 남북대화에 기대와 희망을 거는 것은 북한이 경제적 어려움, 군비 부담을 줄이라 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이지요.
아울러 이번 교류가 실현된다고 해서 우리내부가 무조건 들뜨고 환영하는 분위기가 될 수 없는 요소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이번 접촉에서 북한의 제의를 우리가 과감히 수용한 것은 우리가 자신이 있고 양보해도 지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어떤 형태의 양보라도 정상화를 유도하고 북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잘하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북한의 평양개발·고속도로 건설 등에 관해 말씀이 있었는데 이런 방식을 중공 측으로부터 듣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인들이 중공에 한국의 개발모델을 배우라고 전해서 중공은 한국의 경제개발에 관심이 많습니다.
김일성은 혁명으로 자신을 우상화했지만 김정일로서는 경제개발로 자신의 정통성을 찾을수 밖에 없죠.
북한은 현재 남한을 적화할 능력이 없다고 봅니다. 60년대와 달리 북한은 이제 「이기는 쪽」이 아닌 「지는 쪽」의 수세적 방어적 입장이지요. 인구 GNP 국제사회의 비중 등으로 보아 남을 침략하는 것은 북한의 자살행위 입니다.
우리는 선도하는 입장에서 순진한 반공주의자가 갖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김=형님 같은 의장이 돼야합니다. 그렇지만 좀 조심스럽게 나가야 하겠죠. 너무나 쓰라린 경험이 있지않습니까.
오늘날도 남조선혁명의 슬로건을 버리고 있지 않고 있으며 랭군사건이 불과 2년 전이 아닙니까.
▲이=국제상황에서 보면 남침은 고립이지요. 6·25때완 상황이 다릅니다. 당시는 일본이 무력했고 소·중공이 전적으로 북을 지원했으며 미국은 한반도에서 손을 뗀다는 얘기가 나왔지요. 그러나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이런 점이 앞으로의 교류가 더욱 낙관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요소지요.
아울러 남북교류를 하는데 국내정치상의 갈등, 민주화문제의 이견이 노출되면 안됩니다.
국내정치문제가 북한이 걸고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닌가 생각되고 오산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될까 걱정입니다.
북한 정체의 정치 발전도 마차가지지요. 결국 남북문제는 국내 정치발전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읍니다.
남북의 내적 정치발전이 이룩될 때 건전한 의미의 평화통일의 기본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이번 고향방문단의 성공적 타결은 곧이어 열리는 제9차 적십자 평양 본 회담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봅니다.
8차 회담에서 합의를 본 문제들의 구체적 진전 또한 기대됩니다.
경제회담에 있어서도 앞으로 물자교류, 경의선 철도 복구 등 의제들이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증대되었어요.
국회회담은 북한측이 행정부간 처리사항인 불가침협정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본래의 국회회담의 성격을 찾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볼 수 있읍니다.
또 체육회담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향방문단의 교환은 국민적 교류라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체육교류를 못 할 까닭이 없어요.
이번 합의가 앞으로 남북대화전반에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북의 기본입장은 정치회담이고 이것이 타결되면 여타의 대화는 자동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슈별로 다원화해서 이런 것들의 성과를 토대로 정치회담을 마련해가자는 입장 아니었습니까.
남북대화의 기본추세로 보면 우리입장의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크게 보면 남북이 군사대치보다 개선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들의 속셈을 모르니 우리로서는 물론 완벽한 준비를 해야겠지요.
장기적으로는 북한의 정권구조도 테크너크래트로 바뀌어야 합니다. 김일성의 혁명세대가 퇴장하고 교체된 엘리트는 정통성을 경제발전에 맞출 때 평화공존의 틀이 더욱 다져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가 북한을 이끌어야 합니다.
▲김=평화공존문제 민족통일의 두 가지 큰 문제는 남북당사국이 해결해야 합니다.
현재의 국제적 환경이 우리에게 유리하게 진행되고 역량비교로 보아도 우리가 형님으로서 도와 줄 수 있는 처지에 있지요.
▲이=앞으로 평양을 통해 만주·시베리아의 이산가족을 만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지요.
남과 북이 합쳐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보는 문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좀 꿈같은 얘기지만 아시안 하이웨이, 말하자면 터키에서 인도·월남·중공·평양·서울을 잇는 고속도로 건설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일이 있어요. 남북한이 공존 공생하는 방향으로 합의하여 강대국의 영향권 경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번에 방문단 규모가 작고, 북에 다소 양보한 것이 아니냐는 평가도 있을 수 있으나 작은 규모에서 시작해 조심스럽게 한 발짝 씩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긍정적으로 봐야합니다.
▲이=평화공존은 한족의 완전한 승리, 상대의 소멸을 추구하는 냉전구조와는 다릅니다. 상대의 약점을 들추지 않고 체면을 살려줘야 교류확대가 가능합니다. <기록=박보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