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2>제83화 장경근 일기(3)본지 독점게재-배반당한 약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60년 3월 5일
중앙당기획위원회를 끝내고 나의 선거구인 부천군당선거대책위 기획위원회에 참석하러 갔다. 주 2회의 회의중 나는 토요일회의에만 참석해 왔다. 회의가 열리자 모두들 내무부의 부정선거지령문을 염려해 질문을 했다. 나는 최인규내무가 전국경찰에 부정선거를 못하도록 지시할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회의를 끝내고 몇사람만 따로 별실로 불렀다. 김천룡부천군수, 김만의부천교육감, 박주은 부평경찰서장, 임창식인천수상경찰서장과 구봉회등 세부위원장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부정선거 지령문이 폭로된 날 중앙당기획위원회에서 토의된 내용을 들려주었다. 기획위원 다수가 반대했다는 점을 나는 특히 강조했다. 또 내가 이튿날 이기붕의장을 만나 지령의 백지화를 건의한 사실도 얘기했다.
나는 그들에게 며칠 사이 최내무가 약속대로 부정선거지령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릴줄 믿지만 설혹 어떤 경우에도, 부천군에서는 선거 부정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는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밝혔다. 군수와 서장등 기관장들은 내 뜻에 찬동했다. 두 경찰서장도 내무부의 지시로 완장도 이미 준비해 두었다고 실토하고 장의원의 뜻에 따라 돌아가는 대로 즉시 완장은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60년 3월 7일
새벽 일찍 지프로 청주유세에 나갔다. 조치원까지 마중나온 도당간부·충북지사와 함께 청주에 닿아 기자회견을 하는 사이 함께 연설할 황성수·구철회 의원도 와서 동석했다.
모두 함께 점심을 들기 위해 한식집엘 갔는데 청주출신 오범수의원이 나에게만 상의할 일이 있다면서 별실로 안내했다. 오의원의 비밀스런 얘기도 예상대로 내무부의 비밀지령문제였다.
내가 기획위원회의 토의내용등을 대충 설명하고 최내무의 시정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했더니 오의원은 그사이 며칠이 지났지만 시정한 기색이 없다고 했다. 경찰은 우리와는 전혀 별도로 움직입니다. 이대로면 부정지령은 그대로 수행될 것이고 내후년의 국회의원선거는 자유당이 참패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서울에 가는대로 취소여부를 확인할 것이지만 각 지역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경찰의 부정을 막도록 감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연설회에서 나는 자유당의 업적을, 황의원은 이승만·이기붕후보를, 그리고 구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한 배경을 설명했다. 청중의 반응으로 보아 부통령 선거도 비관적인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60년 3윌 9일
나는 이틀간의 충청지방 유세결과를 보고한다는 명목으로 아침 일찍 이기붕의장댁으로 갔다. 명목은 선거분위기 보고지만 실은 부정선거 지령의 그 뒤의 처리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응접실에 들어가니 김익기 의원이 먼저 와 있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반기며 얘기를 좀 하자고 했다.
장의원! 나는 안동에 내려가 한달내내 현지서 선거운동만 하다가 어제 서울에 왔습니다. 왜 왔는고하니 경찰이 출신의원인 나까지도 따돌리고 극비리에 작업을 하고있다 말입니다. 이건 신문에 난 부정선거 준비가 틀림없습니다…. 그래 의장님께 이걸 직소하기 위해 올라 왔습니다…. 중앙당기획위원회는 무얼하는 곳인데 이런 무모한것을 막지 못하고 당을 망치려 하십니까. 그는 마치 내가 계획의 당사자이기도 하듯 따지고 들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