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3당 ‘거부권’ 고리로 구조조정·옥시청문회 공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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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左), 박지원(右)

27일 오전 7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상시 청문회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부권(재의 요구)을 행사할 거란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박 원내대표의 휴대전화는 통화 중이었다. 그 또한 우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연결된 통화에서 둘은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20대 국회(30일 임기 시작)에서 재의결을 추진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공조 합의 후 박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내부결속용이자 새벽에 한강 다리 건너는 듯한 (다급한) 거부권 행사”라고 꼬집었다. 둘은 이후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와도 각각 전화로 같은 내용을 합의했다.

김종인 “거부권, 결국 대통령이 손해”
박지원 “새벽에 한강다리 건너는 듯”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야3당이 뭉치고 있다.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국회가 재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19대 국회에서 처리했다가 거부된 법안을 20대 국회에서 재의결할 수 있는지는 법학자들의 의견도 갈린다. 헌법 51조는 ‘의결되지 못한 법률안’은 국회 임기가 만료됐을 때 폐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부권은 법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게 아니라 재검토를 요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라며 “본회의에서 의결된 법안을 다시 논의하지 않고 자동폐기하는 것은 거부권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거부권이 행사된 법은 ‘의결되지 못한 법률안’”이라며 “다음 국회로 승계가 되지 않고 자동폐기된다”고 말했다.

야3당 요구대로 재의결한다 해도 본회의를 다시 통과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야3당의 의석(더민주 123, 국민의당 38, 정의당 6)을 모두 더해도 167석이기 때문이다. 법률안 재의결에 필요한 찬성 의원 수(200명)에 미치지 못한다. 무소속 의원과 새누리당 이탈표를 더해도 10표 안팎이란 게 여야 공통의 분석이다. 박 원내대표는 “그래도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여기엔 거부권 정국을 정부·여당을 압박할 고리로 삼겠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실제 다른 현안에서 야권이 손발을 척척 맞추고 있다. 이날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문제와 관련해 “(주주·채권자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대한 책임 추궁이 우선이다”고 주장했다. 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주장과 같다.

김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협치하자고 해놓고 저런 짓을 하면 정치가 꼬일 수밖에 없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국 손해 보는 것은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더민주가 특별위원회를 꾸려 조사 중인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해서도 박 원내대표는 “‘가습기 청문회’를 추진하면서 문제를 함께 풀겠다”고 말했다.

국회일정 보이콧 같은 과거식 강경 대응을 하지 않는다는 데도 야권은 입을 맞췄다. 우 원내대표는 “이 문제(국회법 개정안)에 너무 매몰돼 민생 현안을 뒤로 미루진 않겠다”고 말했다.

최선욱·김경희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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