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갈등·빈곤이 빚은 악순환 |쿠데타로 정권 이어가는 우간다의 사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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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7일 발생한 우간다 독립이후 세번째 군사쿠데타는 종족간의 갈등과 경제적 빈곤이 빚은 또 하나의 악순환이다.
79년4월 탄자니아의 도움으로 권좌에 앉았던 「밀톤·오보테」 대통령 정부는 8년간에 걸친 「이디·아민」의 피의 정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들의 기대 속에 출발했었다.
그러나 「오보테」 정부도 정권유지에 급급, 정적 20만 명을 죽이거나 추방시켰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바간다족으로 종족간의 갈등만 심화시켰다.
또 79년 「오보테」 집권이후 73년 「아민」에 의해 단절됐던 서방국가와의 외교를 재개하고 경제원조도 받아들였으나 「아민」의 실정으로 인한 경제난은 심화돼 주요수출품인 코피는 생산량이 70년 17만5천t에서 81년에는 5만t으로 급격히 줄었다. 또 우간다 봉급생활자의 월평균 임금은 5달러로 군인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여행자들을 털거나 게릴라소탕을 명분으로 마을들을 약탈, 국민들의 원성을 사왔다.
이번 쿠데타의 직접적인 원인은 부족간의 고질적인 대립에 연유하고 있다. 80년 총선에서 람이족의 「오보테」 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아민」 정권에서 핍박받던 다수부족인 바간다족과 아촐리족이 불만을 표시하면서 「오보테」 축출을 기도해 왔고 7월초 이번 쿠데타의 주동인물인 「오켈로」 준장의 암살기도 실패이후 「오보테」는 그를 해임, 지난해 랑이족출신의 참모총상 임명이후 첨예화된 아촐리-랑이족간의 갈등을 폭발시킨 것이다.
이번 쿠데타의 주역 「오켈로」준장은 지난79년 「아민」축출 쿠데타에서 공을 세워 영웅이 된 가톨릭 신자로 쿠데타 성공직후 제일먼저 『우간다의 피의 역사를 장식해온 종족간의 갈등을 종식하겠으며 이에 군이 앞장서겠다』고 공약했다.
79년 실권 이후 리비아를 거쳐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체류하면서 반「오보테」활동을 벌여왔던 「아민」은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번 쿠데타는 자신이 지원한 것』 이라고 주장했다. 「아민」 은 우간다에 돌아간다 해도 『대통령은 다시 하지 않고 민주주의를 도입하겠다』 고 말해왔다.
회교도를 자처하는 「아민」은 망명 후 우간다 은행에 예금돼 있는 50만 달러가 동결되자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정부의 보조를 받으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간다는 81년 「오보테」가 북한을 방문한 뒤 북한의 군사고문단을 받아 들였고 84년에는 실력자인 「파울로·무왕가」 부통령 겸 국방상도 북한을 방문, 군사협력을 강화해왔다.
한편 한국과는 북한의 조작으로 84년9월 자신들에게 불리한 한국신문보도를 이유로 한국대사를 추방했었다. <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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