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미술다와야 한다|전문가 6인이 말하는 「민중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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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민중미술은 개념부터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민중미술을 하는 폭에선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미술」이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반대하는 쪽에선 「민중은 실체이지 이데올로기가 아니다」라고 맞선다. 민중은 손으로 가리킬수 있고 만질수 있는 대상이지 관념이 아니라는 얘기다. 불투명하게 묶어진 상태여서 보편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이같은 실념론과 유명론의 대립때문에 민중미술은 파당을 지을 소지가 많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미술은 받아들이기와 드러내기가 있다. 받아들이기는 객관적이고 드러내기는 주관적이다.
받아들이기는 본보기가 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상파 화가들은 성찰을 통해 받아들이기를 해서 예술의 꽃을 피웠다.
요즘 세계미술의 동향은 드러내기 쪽으로 치닫고 있다.
이같은 표현주의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받아들인 다음에 나타내는 것이다.
연구·숙달·학습으로서의 미술은 없고 드려내기만 있는 것이 오늘의 민중미술이라는 꼬집음이다.

<파당지을 소지 많아>
민중미술은 여과과정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평론가·화상의 눈을 거치지 않고 그저 전시장에 걸면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기획을 신중히 하고 작품을 엄선하는 기풍이 만들어지면 부작용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기성 평론가를 불신한다면 출품작가들끼리 모여서라도 자기작품의 자체평가를 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순화되지 않았을까….
받아서 성찰없이 그대로 표현하면 치졸해지게 마련이다. 생각을 거르지 않고 표현하면 곧 「직정경행」이 될수밖에 없다.
민중미술의 또 하나 문제점은 「학습의무」는 이행하지 않고 「탄핵권리」만 주장하는데 있다.

<여과과정 전혀 없어>
미술에 목적이 우선하면 순수성을 잃는다. 사회를 고발하기에 앞서 자신부터 가다듬는 자세가 필요하다.
민중미술은 도상학이 아니다. 하나의 유형으로 묶으려면 큰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 숲에 그 많은 나무가 있는데 왜 하필 떡갈나무만 보려고 드는가.
어떤틀에 맞추려는 미술행위는 파당을 짓는 외에 다른것은 얻을수 없다.
참가하는 작가들이 모여서 유형을 만들어 내야지 유형을 정해놓고 참가작가를 끌어들이는 형식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민중미술을 긍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도 새로운 형식을 만들때 그 표현방법은 난폭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목적이 앞서면 안돼>
요는 선택한 소재를 어떻게 조형화하느냐가 문제라는것-.
처음의 격렬한 소재·형식이 조금씩 세련되어가고 핵심적 부문을 선택할수 있는 단계까지 왔다는 평론가도 있다.
하지만 더 좀 순화시켜야겠다는게 일반적인 평이다.
민중미술을 뒷받침해주는 미술평론가들은 하나같이 내버려두면 걸러지고 틀이 잡혀진다고 보고있다.
민중미술을 극한상황으로 몰고간데는 기성화단에도 문제가 있다.
강한 표현을하는 젊은 작가들을 모두 일군의 민중화가로 묶어놓고 금줄을 쳐 기성의 계단에 으르는 길을 봉쇄해 놓았기 때문이다. 「너희들끼리 놀아라」하는 식이 되어서 외길로 치닫게 된것이다.

<아직 좀더 순화해야>
「내판」 「네판」을 만들어 문을 열지않고 따로 놀게 했기때문에 민중미술이 아닌 반항미술로 일탈했다는 주장이다.
모든 미술평론가·화가들은 『모름지기 미술은 아름다와야 한다』는 대원칙 밑에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하고있다. 아울러 화폭에 어떤 메시지를 담건 그것은 궁극적으로 「미술다운 미술」로 구체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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