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에 생각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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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개헌」이냐, 「호헌」이냐는 논의가 또다시 일고 있는 가운데 제헌절을 맞는 국민의 감회는 어떤 것일까.
한쪽에선 야당단독국회가 개회중이고 또 한쪽에선 법정소란이 이유가 되어 법무장관이 전격 경질되는 작금의 사태가 말해주듯 앞으로의 정국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안과 걱정이 앞선다.
우리의 헌법은 그 동안 무려 여덟차례에 걸쳐 개정되었고 개정의 초점은 권력구조에 맞추어 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제헌 당시 이승만박사의 뜻에 따라 당초의 내각책임제가 대통령중심제로 바뀌는가 하면 이른바 발췌개헌, 사사오인개헌파동, 삼선개헌, 유신헌법의 제정에 이르기까지 권력자의 집권연장 내지 장기집권을 위한 방편으로서 이렇게도 개정되고, 저렇게도 고쳐진 것이 우리의 헌정이 겪어온 파란의 역사였다.
법적인 측면에서 풀이한다면 우리나라의 헌정은 헌법내재적정의(Constitution immanent)와 헌법초월적 정의의 다툼으로 일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다툼이 있는 한. 헌정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일수 밖에 없으며 정국의 안정 또한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개헌이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신장보다 헌법초월적인 정의의 개편에만 초점이 모아진 것은 우리 나름의 특유한 사정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조국의 분단이란 상황은 「안정」의 당위성을 개헌의 명분으로 제공했으며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소홀히 취급되는 경우도 있었다.
현재 여야간에 전개되고있는 개헌논의가 권력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의 정치수준이 아직 후진국의 전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집권세력은 88년의 정권교체를 현행 헌법대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야권에서는 대통령직선제도의 개헌이 선행되지 않는 한 「평화적 정권교체」는 공소한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과거의 개헌이 여당의 정권안보를 위해 제기되고 주도되었던데 비해 현재의 여당인 민정당이 호헌논리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다.
전대통령을 비롯해서 정부 여당의 책임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7년단임과 평화적 정권교체를 다짐해 왔으나 그 공약에 대해서 아직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남아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여당은 도식적인 호헌논리에만 집착하지 말고 일단 공약한 것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확신을 국민들이 갖도록 해주는 일부터 선결해야 한다.
여당이 수호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물론 헌법만이 아니고 현행 헌정체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변화는 수용할 수 없다는 경직된 자세는 곤란하다.
또한 대통령직선제만이 민주화를 향한 최상의 과제로 단정하고 있는 야당의 자세 또한 같은 맥락에서 문제가 있다.
대통령제다, 내각책임제다, 직선이다, 간선이다 하지만제도가 만능일수 없다는 것은 37년간의 우리 헌정사가 분명하게 증언해 주고 있다.
제헌절의 뜻은 전체적인 국력의 신장도 그렁지만 국민들의 의식수준도 아주 높아졌다는 상황변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원칙적으로 헌법내재적정의의 테두리안에서 민주헌정을 발전시킨다는 각도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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