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자율화는 포기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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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교수나 총장은 이제 학생들에게 야단 한번 칠 수 없을 만큼 권위를 잃고 있읍니다. 심각하게 그 원인을 진단하고 용단을 내려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총장의 탄식이 회의장의 공기를 한층 더 무겁게 했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한국정신문학연구원에서 열린 전국종합대학총장간담회.
『정부·학교당국·교수 모두가 자율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고된 시련을 겪으리라고 예상은 했지만 누가 삼민투와 같은 조직이 생겨날 줄 알았겠읍니까』
최근의 학원상황을 겪으며 자신을 잃고 약간은 회의에 빠진 총장도 있었다.
「너무 한꺼번에 풀어버린 것이 아니냐」라든가, 「교수만으로는 폭력을 막을 수 없다」는 진단도 나왔다.
많은 총장들은 대학의 자율화가 마스터 플랜없이 즉흥적으로 급선회한 감이 있다고 토로했다. 학생을 처벌하고 제적한다는 것은 교수로서는 차마 하기 어려운 일인데 하루아침에 복학·복적하고, 다시 또 처벌해야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면서 대학과 교수에 대한 학생의 신뢰에는 공백이 생겼다고 강-수책의 냉-온탕을 되풀이 하는 정부의 학원대책에 화살을 겨누기도 했다.
『교권침해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수들에게 술을 취하도록 해서 실수를 유도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교수들의 비행을 조사해서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평소에는 근엄하기 만한 총장도 어려움을 함께 겪고있는 동료들 앞에서는 철부지가 되는 듯 자기적인 발언도 나왔다.
남앞에서는 드러내 놓을 수 없는 자신들만의 고충과 속앓이병 같은 것이 스스럼없이 토로되고, 동병상련의 처지끼리 정신적으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간담회는 의미를 갖는 모임이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큰 의미는 대학의 본질이나 기능에 비추어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주어졌고, 어떤 어려움을 동반하더라도 자율화는 정착되고 확대돼야할 과제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다는 점에서 찾아야할 것 같다.
총장들의 모임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지시」나 받고, 기껏해야 사무적인 일을 논의하는데 그쳤었다. 이번처럼 「벌거벗고」 속마음을 털어놓은 일은 일찍 없었다.
그래서 그들 총장들이 내린 결론은 호소력을 갖는다. 어떻게 주어졌든 자율화는 포기할 수 없으며 더욱 확대돼 나가야한다든지,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들에게 더많은 권한이 주어져야하고, 정치인은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하지말고 오늘의 문제가 오히려 학외의 정치나 경제·사회문제에서 오고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달라는 진단과 처방은 우리사회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할 그런 것이었다. <권순용 사회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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