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음악은 가요·동요의 중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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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첫 방송돼 국산 애니메이션 창작붐을 선도한 '달려라 하니'. 10여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개그콘서트'같은 데서 패러디할 정도로 인기를 누린 작품이다.

당시 가수 이선희씨가 불렀던 주제가 역시 그 무렵 TV 앞에 앉았던 시청자들의 기억에 생생하다. 그 때 원작자인 만화가 이진주씨가 쓴 가사에 곡을 붙였던 이가 방용석(45.헐리우드 매너 대표)씨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어도 방씨는 애니메이션 음악으로는 국내에서 첫손 꼽히는 사람이다. "콧김 쌕쌕,두 주먹 빙빙"으로 시작하는 속편 '천방지축 하니'는 물론이고,'영혼기병 라젠카''하얀 마음 백구''탱구와 울라숑''지구용사 벡터맨'등 1백여편의 음악을 담당했다.

국내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 중 줄잡아 70%가 그의 손을 거쳤다는 계산이다. 99년의 '디지몬 어드벤처'는 주제가 음반이 10만장이나 팔리기도 했다.

최근 그는 색다른 성공을 경험했다. 애니메이션의 인기와는 별도로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주제가'우유송'이 큰 인기를 모은 것이다.

몇 해 전 KBS가 방송한 '아장닷컴'의 주제가였는데,지난해 말 뒤늦게 초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에 입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 휴대전화 벨소리로 10만회 가량 다운로드됐다. 학교에서 급식시간에 활용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콜라 싫어 싫어/홍차 싫어 싫어/새까만 커피 오우 노"하는 가사는 함께 일하는 작사가 김주희씨가 썼고, 곡은 당시 6개월쯤 '헐리우드 매너'에서 일한 대학후배 조형섭씨가 붙였다.

벨소리 업체의 요청으로 방씨는 최근 '우유송2'를 직접 만들어 넘겨줬다. 그는 "곡이 아무리 좋아도 애니메이션이 잘돼야 인기가 생기는 것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놀라워했다.

사실 방씨는 작품마다 자신의 색깔을 고집하는 '작가'이기보다는 원작의 요청에 충실한 '전문가'를 자처한다. "주어진 작품마다 그에 맞게 해내는 게 진짜 프로"라고 그는 말했다. 이런 생각은 그의 본업이 '광고쟁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 했다.

일찍부터 실용음악에 뜻을 둔 그는 중앙대 음악학과를 나와 가수 김도향씨가 운영하던 서울오디오에 입사, 광고음악 감독을 시작했다. 서울오디오에서 맡은 '달려라 하니'는 그의 첫 애니메이션 작품.

이후 미국 유학에서 5년 만에 돌아와 광고음악을 만드는 지금의 회사를 차렸는데, '달려라 하니'시절 제작진의 요청으로 다시 애니메이션 작업을 병행하게 됐다.

지금도 그의 작업분량은 광고음악이 다수를 차지한다. 방씨가 만든 '이~편한세상'이나 '렛츠,케이티'에서 보듯 요즘 광고음악은 예전같은 'CM송'보다는 음향.음악을 곁들인 효과에 가깝다.

국산 창작 애니메이션의 경우 주제가 외에 이런 세세한 효과까지 만들어내는 것이 음악감독인 그의 일이다.

방씨는 "광고는 애니메이션보다 국내 역사가 오래됐고,기술적으로도 많은 축적이 이뤄져있다"면서 "이런 노하우를 애니메이션에 투입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광고쪽이 훨씬 수입이 좋은데도 애니메이션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것은 그의 애정이 크게 작용한 셈이다.

잠시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 얘기가 나오자 나직하던 말투가 굵어졌다. 애니메이션 곡이 인기가요와 음반 판매량 수위를 다투는 나라와는 비교가 어렵지 않으냐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애니메이션 시청자가 주로 어린이라는 것도 "애니메이션 음악은 가요와 동요의 중간이어야 한다"는 그의 소신을 뒷받침한다.

앞으로 그의 바람은 극장용 애니메이션 작업. "SF든 신화 얘기든 진한 감동을 주고픈 갈망이 있다"고 했다.

이후남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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