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칙「입법예고」로 올린 의보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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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사업장 근로자들의 의료보험료를 상여금과 각종 수당 등에서도 떼어내기로 한 보사부는 그같은 내용의 의료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식발표 없이 관보(관보·4월17일자)에만 슬쩍 게재했다. 이른바 「입법예고」다.
입법예고란 정부가 법령을 제정·개정하거나 제도를 신실·개변하기 전 일반국민의 찬·반 여론을 듣기 위해 만들어진 바람직한 제도다.
그러나 관보라는게 관공서에서만 볼 수 있는, 그야말로 「관보」일뿐 일반인들은 구해 볼 수가 없고 그런게 있는지를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입법이 「예고」가 되자면 관보 게재와는 관계없이 일반이 알 수 있게 전파가 되어야한다. 공식발표 보도가 가장 보편적인 수단일 것이다.
예고는 하되 일반이 될수록 모르게 하겠다는 태도는 반대여론이 나중에 일 경우 『예고를 할 때는 가만히 있다가 뒤늦게 무슨 딴 소리냐』고 뒤통수를 치기 위한 얕은 꾀라고 해도 크게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보사부의 태도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슬그머니 관보에만 게재한 내용이 보도(중앙일보 27일자 사회면)되자 관계자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같은 방안이 사업주 근로자들에게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될 염려가 있음을 장관이 지적, 각종 수당에서는 보험료를 떼지 말고 상여금에서만 공제하는 방안을 세우도록 지난 24일 이미 담당국장에게 지시를 했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말은 따져보면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장관이 모르게 정책안이 마련돼 관보에 게재될 수가 과연 실제로 있을 것인가.
이 점을 지적하자 『관보에 게재되기 전 장관이 그같은 내용의 방안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앞서 말한대로 개선지시를 했는데 담당국장이 내용을 고치지 않고 원안대로 관보에 게재했다』고 해괴(?)한 실명을 고쳐서 했다.
사실이라면 담당국장은 장관의 지시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일을 처리한 셈이 된다. 이는 위계질서상의 중대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 좀더 떳떳하지 못할까.
이번 일을 추진하는 보사부의 태도는 처음부터 잘못되고 있는 인상이다.
보험재정의 위기는 갑작스런 사태도, 보사부만의 책임도 아니다. 중지를 모으고 모든 시민의 합의·양해아래 발전적인 해결방안이 강구되어야지 보사부 혼자서 쉬쉬해가며 슬그머니 보험료나 올리는 방안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사회복지의 핵심적인 제도로 의료보험은 웬만큼 자리잡아가고 있으나 결국 자기부담이 가능한 중산층 이상의 주머니돈을 털어 하는 자율(?)보험제도인 탓에 양적확대나 질적향상에서 한계에 부닥쳐 있는 것이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어려운 재정형편에 비추어 어차피 앞으로도 의료보험에 정부예산의 큰 지원은 어려운 만큼 돈내는 시민들이 자기들의 토론과 합의를 거쳐 방향을 설정해가도록 보사부는 이제 정책방향의 설정이나 추진에 좀더 솔직해지기를 바란다.
임수홍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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