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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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역도가 북한을 제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중공의 항주에서 열린 제17회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의 성적이다.
우리 건아들의 활약이 마음 든든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당장은 경량급 선수들의 부진으로 중공을 능가하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러나 남·북한의 메달 수를 합치면 금11·은9·동 l2개로 금10·은10·동 5개를 기록한 중공보다 우위에 선다는 손쉬운 계산으로 우리 민족의 잠재적 힘에 대해 은근한 자신도 느낀다.
역도가 근대적 형태를 갖춘 것은 1800년대. 「구츠·무츠」와「얀」의 덤벨 운동이 효시다.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서 이 경기는 체조의 한 부분으로 다뤄졌다. 한 손에 의한 저크(용상)와 두손 저크의 2종목에 체중 제한도 없었다.
독립 경기가 된 것은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5체급으로 나눠 경기했을 때부터였다.
우리가 역도를 받아들인 것은 몇 년이 더 지나서다. 1928년 2월 24일 중앙기독교 청년회가 현상 역기 시합을 가진 것이 그것이다.
남수일·김성집 같은 선수들이 30, 40년대의 세계 기록 보유자였던 것은 인상적이다.
그것은 한국인 역사의 전통을 생각케 한다.
『삼국지』「위지동이전」의 부여 조엔『집집마다 각기 개장을 가지고 있다. 전의 침구가 있으면 출전하여 이것으로 싸운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대 삼한에는 무예와 힘이 출중한 거수 장수가 부족장이 되어 부족을 이끌었다.
동이의 창해역사가 무거운 철퇴를 집어던져 진시황을 죽이려다 실패한 고사도 있다.
물론 서양에도 역사의 기록은 많이 전한다. B·C 5세기 크로트나의「미로」는 송아지가 황소로 자랄 때까지 매일 이것을 들어올리는 훈련을 했다.
그러나 양치기「티토룸」은「미로」가 들지 못했던 바윗돌을 메고 14m나 걸어가 그것을 던졌다. 그 시대「비본」은 1백43kg의 사암을 한 손으로 들어 머리 너머로 던졌다.
그런 괴력사들의 전통이 소련과 동구권 역도의 오늘을 가능케 했다.
소련과 불가리아는 지금 세계 역도 기록을 석권하고 있다. 10체급 30개 부문 중 소련이 15개, 불가리아가 9개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무제한급의 소련 선수「피사렌코」는 4백57·5kg 합계로 인간의「힘의 한계」를 지탱하고 있다.
역도는 바로 인간의 힘의 한계를 늘려 가는 운동이다. 고통과 환희가 따르는 건 물론이다.
그리스 신화의「시지푸스」처럼 기약 없이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인고가 거기에 있다.
우리의 선수들이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는 의욕적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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