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와 우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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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우동」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비싼 값에 팔아온 일식 음식점 대표가 구속되었다.
일본에서 밀수해온 재료로 만들었다는 우동은 한 그릇에 6천원, 우동스끼는 1만2천원이나 됐다.
그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식품위생법과 관세법·사기·공정거래법 위반.
우동은 사전적으로 말하면 소맥분으로 만든 면류의 일종이다.
면류는 기원전 5천년께 아시아에서 기원했다. 당대 중국 산서지방엔 국수를 즐기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송대에 탕병의 발달과 함께 면도 병행 발달했다.
그것이 일본에 전해진 것은 나양시대의 삭병이란 과자다.
그러나 우동의 시원은 8세기 나양시대에 전해와 10세기 평안조 때 발달한 혼돈이란 과자다. 소맥분단자에 속을 싸고 익힌 것으로, 뜨거워서 온돈이라고 했다. 그것이 먹는 것이기 때문에 온돈이 되고 16세기 실정말기엔 우동이 됐다고 한다.
그것은 지금의 만두와 비슷한 것이다. 지금처럼 길게 자른 면은 옛날에 절맥이라했다. 그게 17세기 강호시대에 이르러 우동이 됐다. 일인들은 그걸 순수한 일본의 발명품이라고 한다.
그러나 「소바」(메밀)의 경우는 다르다. 원산지인 아시아중북부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건너갔다. 원래 구황식으로 이용되었으나 강호시대 조선승 원진이 남부 동대사에 와서 메밀가루에 소맥분을 넣어 우동처럼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로 해서 일본의 면류는 동경의 소바, 대판의 우동이란 전통을 잇고 있다.
우리의 국수가 언제부터 식용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고려사』엔 사대부의 제례에 면을 쓴다고 하고 절에서 면을 만들어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언각비』엔 칼로 썬 것을 절면(칼국수), 누른 것을 접조면, 마른 것을 괘면이라 했다. 콩가루·메밀가루·녹두가루에 밀가루를 섞은 여러 가지 국수를 즐겼을 것도 분명하다.
일본에 소바(메밀국수)를 가르쳐 준 것이 한인인 것을 보면 우리 식문화의 전통이 어떻다는 건 족히 알 수가 있다.
오늘에 와서 일식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터무니없는 값에도 개의치 않고 떼로 몰려들어 일본 우동에 넋이 빠져버리는 한심한 후손들이 있다는 게 부끄럽기만 하다.
일본 우동을 탓하는 게 아니다. 절도를 모르는 기호작태를 탓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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