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주체를 경영자로 제한한 상법 배임죄 처벌 검토해볼 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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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3호 10면

기업이 추구하는 이윤은 어쩌면 미래의 위험을 감수(Risk Taking)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자주 썼다는 “이봐! 해봤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기업경영자의 도전정신은 기업 운영의 본질적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기업경영자 입장에서 형법의 배임죄 처벌규정이 이러한 기업가정신을 고려하지 않아 기업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는 배임죄로 처벌되는 행위의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비판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입법례를 취하고 있는 주요 외국의 입법 현황을 살펴보면 전부 옳다고 할 수는 없다.


독일 형법상 배임죄(Untreue, 제266조) 규정도 미수범 처벌 규정이 없는 점을 제외하고는 본질적으로는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가 없다. 또한 일본 형법상 배임죄(제247조) 규정도 목적범(손해를 가할 목적) 형태로 규정되어 있는 점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와 거의 유사하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에 대응하는 배임죄 규정은 존재하지 않지만 주 법상 사기와 관련한 다양한 처벌규정에 의해 배임행위의 처벌이 가능하다. 임무에 위배하는 권한남용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행위를 배임으로 처벌하는 것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처벌규정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선의로 회사의 이익을 위해 모든 경험 및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에 합치되는 경영상 판단을 했는데도 결과적으로 기업에 손해를 가한 경우까지 배임으로 처벌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판례를 통해 형성된 ‘경영판단의 원칙’을 형법에 도입해 면책을 인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원에서는 2004년 대한보증보험의 한보그룹 특혜보증 사건에서 경영진에 무죄를 확정한 이후 제한적이지만 경영판단 원칙이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다만 배임죄의 성문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미국의 경영판단 원칙은 형사책임을 면죄하는 원리가 아니라 미국 주 회사법상 주주대표소송 등에서 경영진의 민사상 면책을 위한 판례법 이론이다. 델라웨어주에서 먼저 이 원칙을 회사법 규정으로 받아들였고 다른 주들도 이에 따르게 되었다.


일본도 아직까지는 형사재판과 관련해 최고재판소가 ‘경영판단의 원칙’의 판단기준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하고 있지 않다.


독일은 미국에서 발전한 경영판단의 원칙이 독일 연방대법원의 1997년 민사판결(ARAG/Garmenbeck 판결)을 통해 원용되었다. 2006년 주식법(Aktiengesetz) 제93조 제1항(이사의 주의 의무와 책임)에 “이사가 경영상의 판단을 하면서 적절한 정보에 근거해 회사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합리적으로 받아들인 경우에는 의무 위반이 아니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이 규정도 형사면책을 위해 원용하는 데는 적잖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이러한 주요 국가의 입법 현황을 고려해 볼 때 경영판단의 원칙을 형법에 직접 규정하는 것은 법체계적으로 문제가 있다. 다만 우리의 경우 그간 실무에서 적용이 많지 않은 상법상 특별배임죄(제622조) 규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상법상 특별배임죄의 주체는 경영자로 제한돼 있다. 따라서 상법상 이사의 주의 의무 규정에 경영판단에 대한 정의와 요건을 독일의 입법례에 준해 규정하고, 이를 상법상 특별배임죄의 위법성 조각사유로 규정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것이 배임죄 해석의 명확성을 기함과 동시에 기업가정신도 배려하는 해법이 아닐까 생각된다.


김진환?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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