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시종의『하리케인』|정종명의『장외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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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산업화 지상주의 시대가 빚은 부산물인 계층간의 갈등은 70년대이래 우리 문학의 뜨거운 쟁점과 소재로 다뤄져 왔다. 80년대 이후 이 주제는 소설이라는 우아한 미학적 양식의 의상을 벗어던진 채 실록·수기문학 형식으로 등장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즉 최근의 수기문학이 70년대의 노동자소설이 열심히 추구했던 상류층과 하류층간의 각종 갈등에 의한 현실적 부조리를 다루고 있는데 비하여, 이미 일부 소설은 중·상층부의 내부적 갈등을 추적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계층간의 갈등은 존재하며 작가의 역량에 따라서는 항상 새롭게 다룰 수 있는 영구적인 주제다. 다만 이 계층과 계층간의 갈등에 못지 않게 계층내부의 갈등도 흥미있으며 미묘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아니한 시대와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의 진원이나 인간의 본능적인 추악상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흥미롭기 조차 하다.
백시종의『하리케인』(「한국문학」)과 정종명의 『장외전쟁』(「한국문학」)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가볍게 한번 읽을만한 작품이다.
두편 다 산업화 사회에 살면서 인생의 목적 그 자체를 업무와 출세에 빼앗긴 소외당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하리케인』의 김도준은 모 건설회사 싱가포르주재 중견간부로 학생시절엔 모종의 사건을 겪기도 한, 그러나 지금은 산업화 사회의 한 부속품으로 굳어진 좌절당한 인간상의 일면을 지니고 있다. 하철국교수는 김도준의 대학은사로 그의 클럽 집단퇴학 처분 때 유일하게 반대했던, 그래서 해직-투옥-자살한 좌절의 인간상으로 제시된다,.
이들과 대조적인 인간상으로 박만봉이 있다. 전직 국회의원에다「해외건설 새마을추진협의회 명예회장, 해외교포 실태연구소 설립 준비의원장, 무궁화보급운동본부 수석부회장, 대한 서예가협회 종신회장」이란 명함을 가진 박만봉은 일본 육사출신으로 그곳 도착즉시 옛 군대시절 상관이었던 현 주 싱가포르 일본대사를 찾으나 냉대를 받는다.
작가는 김도준과 박만봉의 갈등을 하철국 교수의 행위에 대한 평가의 차이로 예각화 시킨다. 박만봉을 비인격형으로 본 김도준은 VIP 특별 접대라는 명목으로 박을 국제성병 하리케인으로 악명높은 사창가로 안내하는 것으로 이 작가는 갈등의 돌파구를 찾는다.
『장외전쟁』 역시 산업화 시대 속에서 치열한 주도권과 승진 싸움에 휘말린 중간층 이상의 간부진을 내세우고 있다. 이런 소설에 있게 마련인 여인을 통한 음모와 애정의 혼선, 상대편 약점 찾기와 투서전, 적의 힘을 빌어 적을 치게 하는 계략 등등 마치 요즘 성행하는 처세소실의 등식을 대입시킨 듯한 구성은 약간 허술한 느낌이 들지만 계층내부의 갈등을 다뤘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그간 많이 보아온 계층과 계층사이의 갈등은 주로 인간의 생존권을 다룬데 비하여 계층내부의 갈등소재 소설에서는 한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이로 인한 인간과 인간의 소외, 나아가서는 한 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의 궁극적인 핵에까지 시선을 던질 수 있는 좋은 소재다. 계층내부의 갈등도 계층간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민중문학의 주제임을 차제에 확인했으면 싶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선 작가의 냉철한 현실인식 방법상의 변혁이 따라야 하는데 아직은 우리 문학속의 중산층 등장소설이 민중문학적 차원으로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하류층만이 민중문학의 주역이라는 도식과 상류층을 단순한 대중통속소설의 애정 주제로만 다루는 도식을 두루 극복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임헌영<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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