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극우·세금 진보·낙태 중도…‘막말’ 트럼프 오락가락 공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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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선두를 달리는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와는 다른 공약을 내놓으며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공화당의 보수 정체성에 대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는 “트럼프는 제3 당 후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공화당 지도부 “제3당 후보 같다”
월가·부자 증세는 샌더스와 비슷

한국·일본의 핵무장 허용이나 멕시코 국경 장벽 등의 주장으로 ‘극우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공약을 뜯어보면 주요 사안마다 좌우를 오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9일 “트럼프는 이슈에 따라 극우 주장을 하는가 하면, 민주당 공약에 가까운 진보 주장을 내놓으며 오락가락(zigzag)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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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인은 강간범”, “무슬림 미국 입국 금지”라는 막말로 대변되는 트럼프의 이민 공약은 유럽의 극우 정치인 못지 않다. 그는 공화당의 오바마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합법화 법안 반대에서 더 나가 11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전원을 추방하겠다고 호언한다.

무역 부문에서도 공화당이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것과 달리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다. 그는 “중국과 일본은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나라”라며 최대 45%의 무거운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건강보험과 재정 지출에 있어서도 공화당 입장과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공화당 주류처럼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수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저소득층과 노인층을 위한 의료 지원은 찬성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 지출도 현재 22.1%에서 22.7%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소폭 증액이지만 사회보장·건강보험 등에서 재정 지출 감소가 필요하다는 공화당의 ‘작은 정부론’과 대비된다.

트럼프는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 공약을 내세웠다. 10년간 10조 달러 감세라는 그의 공약은 공화당의 감세 입장과 궤를 같이 하지만 대형기업·월가·부자에 대한 증세 주장은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의 공약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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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 정책에서도 이라크전을 비판하고 한국 등 동맹국에 “무임 승차하지 말라”는 주장을 펴는 등 공화당 노선에서 벗어나 있다. FT는 “트럼프의 정책은 일관성이 없고 혼란스럽지만 공화당이 놓친 유권자들, 특히 백인 노동자 계층에게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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