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는 대통령 선거로 통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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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31면

벌써 지쳤다. 어제서야 겨우 대진표가 짜였다. 정당마다 공천을 하고, 후보 등록을 마쳤다. 그런데 선거를 다 치른 기분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공천이 없었다. 집권당이 공천을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냥 못한 것이 아니다. 공천하지도, 낙천하지도 않고, 마감 시한까지 질질 끌며 신경전을 벌였다.


당 대표와 공천관리위원장은 사사건건 부딪쳤고, 급기야 대표가 당 직인을 챙겨 지방으로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사퇴 시한을 넘긴 시점에 절반씩 타협하는 것으로 봉합했지만 무공천 세 후보는 무소속 출마 기회마저 빼앗아버렸다.


선거는 이제 시작인데 별의별 추태를 다 보았다. 왜 이 모양이 됐을까. 문제는 대통령 선거다. 국회의원 선거라면 각 지역마다 최선의 후보를 고르는 것으로 끝이다. 정당도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목표가 대통령의 임기 관리와 다음 대통령 선거에 있으니 충성도가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5일 경기북부경찰청 개청식에서 “본인들만의 정치에서 벗어나… 애국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욕심에, 또는 정치적 입지를 키우려고 여론몰이를 한다는 의미다. 뒤집으면 현직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게 하라는 말이다. 사실 두 사람은 보수진영의 잠재적 대통령 후보군이다.


현직 대통령 입장에서는 가장 불편한 게 바로 이 차기 후보들이다.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차기로 거명되는 것만으로 제거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관계를 봐도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은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친박 쪽에서 “김무성 대표와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김무성 대표 임기는 올 7월까지다. 당 대표를 놓고 다시 맞붙을 수밖에 없다. 그 전당대회는 결국 내년 대통령 선거로 가는 발판이다. 이번 공천만 보면 친박 세력이 비박세력을 상회한다.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면서까지 유승민·이재오 의원 등 비박 중진을 끝까지 챙긴 것도 총선 후 일전(一戰)에 대비한 것이다. 두 사람의 힘도 힘이지만 보스로서의 포용력을 보여주고 세 결집을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렇게 한국식 대통령제에서는 모든 선거, 모든 정치가 대통령선거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권한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당 대표가 몸으로 반대해도 대통령의 눈밖에 난 것이 공천 기준이 되었을까.부작용이 부각돼 보이는 것은 임기 5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기간이 짧아 권력을 집중적으로 휘두를 수밖에 없고, 그 권력만큼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꿈에서 아무 것도 잡을 것이 없는 절벽에서 떨어지듯 권력자는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통령이 취임하면 1년은 인사(人事)만 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는 대략 2000개 정도. 현 정부는 위임을 않고, 직접 챙겼다. 그러다 보니 몇 달씩 자리를 비워두는 경우도 허다했다. 청문회도 거쳐야 한다. 시시콜콜 신상 털기를 하는 통에 주요 보직이 몇 달씩 빈 자리로 남게 되고, 교체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인재를 키우는 과정도 정착되지 못했다. 정부가 바뀌면 초보자를 바로 발탁해 쓴다. 좋은 인물이 있으면 발굴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난 정부의 인물을 모두 배제하는 정파적 인선을 하다 보니 업무의 연속성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정권이 교체돼서 그런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인물은 써도 이명박 정부의 인물은 쓰지 않았다.


임기 중반이 넘어가면 퇴임 후를 고민한다.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의 임기가 어긋나 수시로 선거를 한다. 그때마다 국회는 물론 정부 업무도 마비된다. 당장 이번 총선이 끝나면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 차기 대선 후보 당내 경선, 내년 말 대통령선거로 급속히 빨려들어가게 돼 있다. 야당은 총선을 앞두고 이미 그 전열을 짜며 당까지 쪼개지 않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장기적인 국가 미래 전략을 짤 방법이 없다. 대통령마다 자기 임기 내 업적을 남기려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에서 비난을 받게 된 사정도 결국 그 때문이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하루 아침에 뚝딱 결정하고, 국가 경영에 크나큰 짐을 얹어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정파를 초월한 협의는 아예 불가능하다. 자기 업적만 중요하다. 같은 새누리당 정부라도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사라졌다. 박근혜 표는 ‘창조경제’다. 창조경제도 다음 정부에 이어질지 의문이다. 이런 정책이 1~2년에 성과가 날 일인가. 국가 생존을 위해 절실한 대북정책, 외교정책마저 선거용 포탄으로 동원된다. 5년마다 누더기가 된 정책으로 국제 신뢰를 얻기는 불가능하다.


굳이 이런 장기 과제를 따질 것도 없다. 아무리 사소한 정책도 입안하고 기획해 현장에서 집행하기까지는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이 있다. 더군다나 사후 점검을 통해 성과로 정리하려면 5년 임기 내에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다. 가뜩이나 머리 떼고, 꼬리 떼고, 몸통마저 난도질당한 임기다. 지난 정부가 벌인 일을 설거지하는 것만 해도 예삿일이 아니다.


이렇게 하루살이 정권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지 이제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개헌론이 나올 때마다 ‘제도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뻔한 문제를, 인력으로 넘어서기 힘든 장애물을 그냥 두고 미래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각제가 아니라면 최소한 4년 중임대통령제로라도 바꿔 일을 할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박정희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는 장기집권을 막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전두환 정부 때는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 그런 우려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 정부 체계를 다시 설계할 때가 됐다는 말이다. 최소한 정책의 연속성, 권력의 독점이 아닌 대화와 타협의 정치, 인재의 발굴 육성 방법 등을 개선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기 힘든 한계에 부딪혔다.


이 참에 공천과 선거제도도 함께 점검하는 게 좋겠다. 지역주의의 결과이긴 하지만 ‘공천=당선’인 구조로는 이런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사표(死票)를 양산하고, 표의 등가성(等價性)을 훼손하는 소선거구제도 손질할 필요가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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