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이우환 사태'를 보며…위작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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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천경자화백의 작품 `미인도`.

‘천경자, 이우환 사태’로 불리는 작금의 위작 논란으로 미술계가 시끄럽다. 감정기관에 대한 불신도 터져 나오고 전작도록 발간이나 공인중개사 제도 도입 등 여러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이런 비판과 제안은 물론 다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모든 위작 논란이 다 말끔하게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보다 충격적인 사례가 많은 구미의 경험이 이를 잘 말해준다.

많은 이들이 미술계 내부에서 진위를 정확히 판별하지 못하면 수사나 재판을 해서라도 가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러나 수사나 재판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1993년 미국 연방법원은 이른바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 <리오 네로>에 대해 진작 판결을 내렸다. 소유자는 당연한 결정이라며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저명한 화상 클라우스 펄스가 위작 의견을 굽히지 않아 작품은 지금껏 시장에서 팔리지 않고 있다.

전문집단 내에서 확고한 동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재판 결과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작품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는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부분부터 인상적이고 직관적인 부분까지 많은 것을 포괄한다. 대부분의 위작은 금세 판별이 되지만, 극소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릴 수 있다. 이럴 때는 보다 명확한 근거가 나올 때까지 인내할 필요가 있다.

위작과 관련된 시중의 또 다른 오해 가운데 하나는 진위 판별에 있어 작가의 판단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작가와 전문가 사이에서 진위 공방이 벌어진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물론 생존 작가의 작품을 판별할 때 작가의 판단과 권위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작가가 공개적으로 입장을 천명했음에도 복수의 전문가가 그에 동의하지 않을 때는 좀 더 냉철한 자세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개중에는 작가에게 오류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거장 카렐 아펠은 경매에 출품된 자신의 위작을 진작으로 확인해주었다가 가짜임이 드러나 망신을 당한 적이 있다. 19세기의 거장 코로는 위작임을 알면서도 여러 작품에 진작 사인을 해주어 지금껏 미술사가들의 원망을 산다. 피카소는 자신의 진작을 들고 온 컬렉터에게 확인 사인을 해주지 않아 컬렉터를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프랑스의 거장 발튀스는 그가 위작이라고 주장한 작품들이 뉴욕주대법원에서 진작으로 판결나는 수모를 겪었다. 이렇듯 작가의 주장이라고 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위작도 범죄이니 사람들은 범인이 합당한 처벌을 받으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처벌을 받을지라도 사회적으로는 오히려 ‘보상’을 받는 경우가 꽤 있다. 뛰어난 위조가일 수록 그런 경향이 강한데, 볼프강 벨트라키는 출소 후 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존 마이어트는 조지 클루니에게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영화판권을 팔았다. 이들이 본명으로 사인한 위작(original fakes)은 심지어 수억 원에 팔리고 있다. 위작의 세계는 요지경과 같아서 환부를 도려내려면 그만큼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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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상 최고의 위조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판 메이헤런의 베르메르 위작 ‘엠마오의 식사’

이주헌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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