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 실행 옮기면 북·중 혈맹 파열음 커질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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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5 면

북한 어린이들이 22일 개성시내 도로변에 모여 놀이를 하고 있다. 개성공단은 지난 11일 전면 가동 중단된 후 북한 당국에 의해 폐쇄된 상태다. [AP=뉴시스]

미국과 중국이 역대 최고 강도의 규제 내용을 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초안에 합의함에 따라 북한과 중국 관계가 기로에 섰다. 외교 전문가들은 앞으로 북·중 관계가 당사자 간 외교 행보로 결정되지 않고 유엔과 미·중을 중심으로 한 국제 역학구조에 종속돼 구조적 냉각기를 가질 것으로 예상한다. 당장 북·중 관계의 파국이나 중국의 대북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오지는 않겠지만 혈맹에서 정상적인 국가로의 관계 조정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이 북한의 정찰총국과 원자력공업성까지 제재하는 결의안에 반대하지 않은 것은 대북제재에 객체가 아닌 주체로 참여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결의안의 핵심인 북한의 금융·해운·무역 제재의 경우 중국이 동참하지 않으면 사실상 실효가 없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제재가 시작되면 북한의 반발이 거세지고 북·중 관계는 급랭할 수밖에 없다.


KOTRA에 따르면 북한의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57%에서 2014년 69%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90%까지 치솟았다. 북한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인 철광석의 경우 지난해 대중 수출액이 10억 달러에 달했다. 해운과 금융 분야 역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90% 이상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대북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주도적 역할을 자제하며 대북 관계 악화를 피해왔다. 실제로 중국은 3차 핵실험(2013년 2월) 이후 북한의 은행과 금융거래 금지를 권고하는 안보리 2094 결의안에 동의했으면서도 중국 내 북한의 금융거래에 제재를 가하지 않아 4차 핵실험을 방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번에 왜 중국은 대북제재의 주도자를 자처한 걸까. 첫째, 한국과 미국이 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저지를 위한 명분 확보다. 중국은 사드에 장착된 X밴드 레이더 탐지 거리가 최대 2000㎞에 달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의 추가 핵 개발을 막기 위한 고강도 제재에 적극 참여해 북핵과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사드 설치의 명분을 희석시키겠다는 게 중국의 속셈이다.


둘째, 주요 2개국 G2로서의 국제적 책임에 대한 부담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2013년 전인대(全人大·국회 격) 폐막 연설에서 “(중화부흥이라는)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평화적 발전과 협력을 하는 윈윈 외교를 할 것이며 (대국으로서) 국제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중국은 지난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립하는 등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견제하며 책임 있는 대국 행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이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과거처럼 모른 체 넘어갈 수는 없는 고충이 여기에 있다. 이미 중국 내부에서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 무조건 눈을 감는 봉건적 혈맹이 아니라 국제사회 일원으로 유도해 도발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셋째, 중국 내 북한의 ‘전략적 부담론’ 확산이다. 그동안 중국 외교계에서는 북한이 중·미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중국의 대미 카드이자 전략적 자산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면서 전략적 부담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특히 시 주석이 2012년 말 중화부흥을 선언한 이후 미국과의 국제질서 주도권 경쟁에 북한은 걸림돌로 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왕이저우(王逸舟)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시 주석 취임 이후 중국 외교는 과학적이고 다원화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대북 관계는 시대에 역행하고 있다. 중국 외교학계에서는 이미 북한이 중국의 전략적 부담이라는 논리가 대세다. 만약 북한이 중국에 대해서까지 도발을 하거나 위협을 가할 경우 중·조 우호협력조약도 폐기하는 등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1년 7월 체결된 북·중 우호협력원조조약 4조는 “북·중 양국은 서로의 국가 이익과 관련된 중대한 국제 문제를 서로에게 통보하고 협의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놓고 중국과 협의하거나 논의를 한 적이 없다. 이 조약이 이미 사문화됐다는 얘기다. 이 조약 2조는 중국과 북한 한쪽이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즉시 상대방에게 군사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북·중 혈맹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왕 부원장은 그러나 “북한이 조약을 이행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은 북한의 조약 위반 사례를 모아 조약 폐기 시 그 근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북·중 관계는 49년 10월 수교 이후 혈맹관계를 유지했지만 92년 한·중 수교로 북한의 중국 불신이 급속히 확산돼 냉온 관계가 반복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북한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수정주의’라고 공격해 관계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특히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그해 12월 친중파인 장성택 처형으로 당·정·군 고위급 교류까지 전면 중단되며 위기를 맞았다. 이후 지난해 10월 류윈산(劉雲山)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을 전격 방문해 노동당 창립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면서 양국은 화해 모드로 돌아섰다. 그러나 북한의 핵실험 등 계속된 도발과 중국의 중화부흥 전략이 충돌하면서 북·중 관계는 구조적 냉각기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물론 변수도 있다.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를 강행할 경우 중국이 다시 북한을 포용해 혈맹 관계 복원을 시도할 수 있다. 북한의 도발이 중국의 중화부흥에 걸림돌이지만 사드 문제에 관한 한 북·중은 ‘자국 안보’라는 같은 배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남중국해 영토 분쟁 등으로 미·중 갈등이 심해질 경우 중국의 대북 포용은 더 강해질 수도 있다. 홍콩의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량원(梁文)은 “중국은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사드 배치 등으로)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구축되면 안보위협을 느낀 중국은 세력 균형 차원에서 북한을 포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포기하지 않는 대(對)한반도 3원칙, 즉 ▶비핵화 ▶평화와 안정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도 북·중 관계의 파국을 막는 보루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초강력 대북제재에 동의하면서도 북한 정권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는 대북 석유 공급 중단에 반대하고 미국과 한국을 상대로 남북 평화협정 체결, 6자회담 재개 등을 종용하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형규 중국 전문기자 chkc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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