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디자인 바꾸니 사회당 의석수 두 배 늘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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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10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니키 고니센은 디자인 회사 토닉(Thonik)의 대표이자 아이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 교수다. 남편 토마스 비더쇼벤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토닉은 보익만스 판 뵈닝엔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청·공공도서관 등의 로고 작업을 담당했다. 상하이 미술관, 베니스 국제 건축 비엔날레, 도쿄 스파이럴 갤러리 등에서는 단독 전시회를 열었다.


AGI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추구한다. 디자인이 개인의 취향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이끌기를 바란다. ‘도시 재생’을 주제로 한 2015년 중국 선전 비엔날레에서 보여준 ‘선전 도시/건축 바이-시티 비엔날레’와 브라질에서 개인적으로 실험한 ‘플로리아나폴리스 자! 깃발 프로젝트’는 그의 고민이 반영된 작업들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보기 좋은 겉모습에 국한하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게 그의 디자인 철학이다.

건물의 특징을 깃발에 프린트하고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했던 브라질‘플로리아나폴리스 자! 깃발 프로젝트’

네덜란드 사회당 로고와 CI 작업

줄로 엮은 듯한 타이포그래피를 쓴 ‘선전 도시/건축 바이-시티 비엔날레’

니키 고니센과 토닉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다양한 타이포그래피 작업

‘타이포그래피(글자를 중심으로 한 디자인)’를 주로 이용한다. “긴 문장보다는 글자를 짧게 이미지화한 디자인을 좋아한다. 쉽고 확실하게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료한 메시지는 대중의 기억에 오래 남는다.”


디자인이 꼭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나.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 좋아하지만 모든 걸 직설적으로 표현하진 않는다. 한 번 꼬아서 보기에 재미있고 개성도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내 방식이다. 다양한 색깔과 역동적인 구성으로 어디에 쓰이더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도 중요시한다. 유머도 내가 좋아하는 요소다.”


‘강력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디자인은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나의 사건을 대변할 수도, 사회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디자인은 예쁜 색이나 모양만 추구하지 않는다. 사회를 더 좋게 만드는 힘을 가질 수 있고, 더 좋은 것을 추구하고 제안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더 좋은 세상’에 대해 고민하는 게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변화를 만드는 사람인가. “보통의 사람들은 보수적이어서 변화를 싫어하지만, 디자이너는 궁금증이 많고 생각도 자유롭다. 그래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네덜란드 사회당의 로고와 CI(이미지 통합)?작업이 인상적이었다. “2002년 암스테르담 외곽에서 극우파 정치인이 살해당했다. 범인은 극좌파 청년이었다. 디자이너로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마침 위기감을 느낀 좌파 계열 사회당이 내게 로고 작업을 의뢰했다.”


네덜란드 사회당의 기존 심볼은 날아가는 토마토였다. 부정부패한 이들에게 과감히 토마토를 날리겠다는 투쟁의 상징이었다. 고니센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겠다’는 의미는 좋지만 부정적인 인상도 강하다고 판단했다. 그가 꼭지 부분에 별을 단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의 토마토를 디자인한 이유다.


또 당 대표에게는 보통의 네덜란드 남자들처럼 셔츠와 청바지를 입히고 토마토 수프를 먹는 사진을 찍게 했다. 조리시설을 갖춘 자동차를 만들고 정치인들이 직접 시민들에게 토마토 수프를 나눠주는 거리 캠페인도 벌였다. 선거 때는 ‘NU(네덜란드어로 ‘지금’이라는 뜻) SP(Socialist Party)’라는 네 글자와 결의에 찬 마침표처럼 토마토가 찍힌 포스터를 만들어 ‘지금 사회당에 투표하세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투쟁의 토마토가 수프 권하는 토마토로 변신했다. “토마토 모양의 스펀지, 도시락 통, USB 등의 생활용품을 제작하고 당 대표가 코믹하게 연기하는 동영상도 만들었다. 정치가 멀리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 보통의 사람들이 정치·사회 이슈에 대해 더 활발히 얘기하고 정치인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결국 사회당은 2006년 총선에서 기존의 몇 배가 넘는 의석을 얻었다.”


한국의 정당 로고를 본 적이 있나.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어서 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정당의 로고는 디자인보다 활용도가 더 중요하다. 다양한 곳에 쓰이며 친근하고 재밌게 다가가야 하는데 한국의 정당 로고들은 ‘그래픽 언어’면에서 활용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디자인 프로젝트는. “브라질에서 진행했던 ‘플로리아나폴리스 자! 깃발 프로젝트’다. 네덜란드에서 시민들의 데모는 자연스러운 행위다.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그런데 브라질에선 1984년까지 군사정권 아래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억압돼 왔고, 그런 역사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주눅 들어 있더라. 과거 큰 데모가 열렸던 폴리아나폴리스 도시 거리 건물들의 특징을 잡아 깃발로 만든 다음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각각 살아온 스토리를 인터뷰했다. 보통 깃발은 한 나라 또는 도시의 상징이지만, 개인도 ‘나만의 깃발’을 가짐으로써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깃발이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도록 출발 신호를 알려주는 방아쇠 역할을 하기를 바랐다.”


좋은 디자인이란. “나비효과.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과학 이론처럼 비록 디자인의 힘은 작지만 보다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다.”


서울에 대한 인상은. “크고 아름다운 도시다. 또 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호기심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 서울에 오면 매번 열려 있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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